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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하는 이 명령]
김성우 목사
신 27:1~10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으신가요? 저도 “하나님, 어디로 가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많이 기도하는데, 오늘 본문을 보니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라, 하지 마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세 번째 설교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원어로는 “그리고 명령하다”로 시작합니다. 1절에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이라고 하며 ‘명령’이 반복되고, 마지막 10절에서도 다시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은 죄인인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인 우리는 명령을 싫어합니다. 명령을 몰라서가 아니라 명령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발심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지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가실 수도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명령을 통해 자발적인 화평으로 초청하십니다. 그렇다면 “명령하는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돌을 세우고 석회를 바른 후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배운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야 훈련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면 거대한 여리고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을 어떻게 공략할지 먼저 가르치지 않으시고 “기록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수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잊지 못할 아픔,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가 마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처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도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건을 감정대로 해석하지 않으려면 말씀을 바라보며 기록해야 합니다. 큰 돌에도 바람과 비에 깎인 흔적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흔적 위에 먼저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유명한 변호사인 카레나 킬코인은 『생각이 인생을 바꾸는 게 아니라 행동이 인생을 바꾼다』라는 책에서 우리의 뇌는 트라우마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거짓 서사를 지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록을 통해 사실을 알아차림으로 거짓 서사에서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이라는 석회가 발라지고 그 위에 오늘 주신 말씀으로 적용할 때, 과거의 상처와 거짓 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새롭게 기록됩니다. 적용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죄가 태워지고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질 줄 믿습니다.
둘째, 에발산 위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기록한 돌을 그리심산이 아니라 에발산에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리심산은 축복을 선포하는 산이고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하는 산입니다. 하나님이 에발산 위에 돌을 세우라고 하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한 글자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명령을 지켰다면 그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에발산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제단도 함께 세우라고 하십니다. 번제는 내 죄를 대신해서 제물이 온전히 하나님께 태워져 죄의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내가 뼛속까지 죄인이라는 것이 보일 때 비로소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또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죄의 값을 치러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하시며 자녀 되는 자격을 주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제단을 ‘다듬지 않은 돌’로 쌓으라고 하십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가족과 배우자와 자녀, 공동체의 지체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돌입니다. 내가 철 연장을 대어 원하는 모습으로 다듬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돌들이 모여 제단을 이루고, 그 제단에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셋째, 잠잠히 들어야 합니다.
9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잠하다’는 단순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듣기 위해 조용히 하는 것’입니다.
유아부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모두 제자리”라는 노래가 들리면 장난감을 내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듣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엄마는 엄마의 자리, 남편은 남편의 자리, 아내는 아내의 자리, 성도는 예배와 목장의 자리에서 잠잠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잠잠하여 들으라”고 하신 후에,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명령을 지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너는 내 백성이다. 내 자녀다”라고 말씀하신 그 사랑에 감동하여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10절에 “명령하는 그 명령”이 한 번 더 반복되는데, 1절은 “너희에게”, 10절은 “너에게” 명령합니다. ‘너희에게’ 선포되는 말씀을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하라, 하지 마라, 지키라.” 그러므로 오늘 주시는 말씀을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씀조차 내 힘으로 지킬 수 없는 에발산 위의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 십자가가 보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앉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셔서 명령을 지킬 힘까지 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하나씩 순종하며 그분의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