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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한 대로]
김성우 목사
신 23:15~23
오늘 말씀은 모세의 고별 설교인 신명기입니다. 죽음을 앞둔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전합니다. 출애굽 2세대는 부모 세대가 광야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며 상처와 아픔, 열등감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광야에서 보낸 40년이 단순한 고난이나 저주가 아니라 그들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에 더욱 가까이 온 과정이었다고 거듭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저주 같고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것을 어떻게 다시 해석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거주하게 하라”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주인을 피해 이스라엘로 도망한 종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그가 원하는 곳에 함께 거주하게 하며 압제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도망하거든’의 히브리어 ‘나찰’은 ‘도망하다’는 뜻 외에 ‘구원하다, 건져내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에게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구원을 위해 찾아온 그 한 사람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라고 합니다. 신명기에 환대에 대한 명령은 단순한 도덕적 친절이 아니라 구원의 기억에서 터져 나오는 은혜입니다.
‘환대’란 내 공간에 찾아온 타인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우리가 십자가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먼저 환대받았기에 내게 찾아온 다른 죄인에게도 자리를 내어줄 수 있습니다.
나만의 세계가 깨어지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과거 속 어둠과 실패를 말씀으로 다시 읽고 해석하여 간증으로 나누는 것도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둘째, “하지 마라”입니다.
도망한 종에게 자리를 내어준다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환대에는 반드시 경계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음행과 돈거래입니다. 이것들은 공동체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나안 종교의 신전 창기와 남창은 ‘케데샤’, ‘카데쉬’라고 불렀는데 놀랍게도 ‘거룩하다’라는 뜻의 ‘카도쉬’에서 유래했습니다. 당시에는 자신의 욕망과 번영을 종교적인 행위로 포장하여 거룩한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번영을 거룩한 것으로 포장하는 것이 음란입니다. 심지어 사역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주님을 위한 것인지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19절에 형제에게 돈을 꾸어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당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생존과 직결된 어려움 가운데 있기 때문에 형제를 살리는 일에는 이자를 받지 말고, 타국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하십니다. 타국인은 장사하러 온 사람이나 용병과 같은 경제적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살리는 것과 경제적인 거래를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이자’를 뜻하는 ‘네셰크’는 ‘물어뜯다, 뱀이 문다’라는 뜻의 ‘나샤크’에서 나온 말입니다. 돈거래가 뱀이 물어뜯듯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저는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 매일 필요한 돈을 드렸지만, 더 달라고 하실 때 술을 마셔 자신을 해치는 것을 알기에 거절해야 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돈거래를 할 때는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것인지,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는 것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환대한다고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관계를 깨뜨리는 음행과 돈거래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지키라”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처음 서원한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지팡이 하나 들고 도망가 돌베개를 베고 잠든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만나 환상을 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창 28:12) 이 사닥다리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려와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야곱을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경험한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결국 우리가 서원을 지키는 것은 내 힘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부어주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결혼을 지키겠다고 서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뼛속까지 죄인이기에 이 서원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내 힘으로 열심히 하면 “내가 이렇게 했는데”라는 생색과 원망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부어주시고 사닥다리를 내려주셔야 우리는 서원을 지킬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신 23:21) 여기서 ‘갚다’라는 단어는 ‘샬롬’ 즉 ‘화평’과 같은 어근인 ‘샬람’입니다. ‘샬람’은 단순히 돈을 갚는 행위가 아니라 결핍에서 완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이 결혼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으며 서른두 살에 폐경되어 결혼을 포기하려 했던 집사님은 자신의 아픔을 받아주는 형제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혼인신고 7일 만에 남편이 결혼 예물과 축의금까지 모두 도박으로 탕진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하고 싶었지만 목장 공동체가 찾아와 함께하며 결혼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왔고, 남편 집사님은 정신병원 입원 치료와 양육을 받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아내 집사님의 태의 문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통해 지킬 수 없었던 이 가정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로 단순하지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은혜의 사닥다리를 내려주실 때, 그 은혜로 말씀을 지키며 우리의 삶도 다시 해석됩니다.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내게 찾아온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공동체를 깨뜨리는 음행과 돈거래는 끊어내며,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과 온전한 ‘샬롬’을 이루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