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이성은 목사
신 20:10~20
할렐루야! 이성은 목사입니다. 맑은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교회로 향하던 지난 월요일 아침, 주일 설교를 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해 다시 큐티 말씀을 보니 ‘율법서를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라’의 ‘평생’ 단어가 나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혹시 여러분의 삶이 광야에 내던져 있거나 바벨론에 사로잡혀 계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범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첫째, 먼저 ”화평”을 선언해야 합니다.본문은 이스라엘 군대의 ‘전쟁 규례’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날마다 죄와 싸우는 영적 전쟁이고, 이 전쟁은 절대 피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은 의외의 작전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죄의 문제를 반드시 직면해야 진정한 화평이 찾아옵니다. 화평은 원어로 ‘샬롬’이고, 근원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화평을 선언하지 않고 전쟁만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기에 적용해 보면, 하루를 큐티로 시작하는 것입니다.11절에는 화평의 말씀을 듣고 성문을 여는 자는 조공을 바치고 섬기라고 합니다. 서로 화평하기로 했으니 동등한 관계 같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화평은 내가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바꾸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36년 전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샬롬”하고 찾아오셨지만, 저는 ‘내가 주인’으로 살며 전쟁하였습니다. 몸과 가난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거짓 화평이었는데, 목사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식물인간이 된 것을 저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하게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신학교까지 갔지만 해석이 안 되니 화평한 척을 하며 늘 곤고했습니다. 그런데 구속사의 성문을 열고 팔복의 말씀으로 해석이 되니 진정한 예수의 종으로 거듭나 지금은 참된 화평과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둘째,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해야 합니다.하나님은 성읍의 호흡 있는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잔인한 이야기가 아니라 거룩한 이야기입니다. ‘진멸’의 원어는 ‘헤렘’인데, 이 단어는 단순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서 구별하다’라는 ‘봉헌’을 의미합니다. 죄를 진멸하는 영적 전쟁은 ‘싸움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힘을 쏟으면 하나님께서 죄를 진멸해 가십니다. 진멸할 때 ‘하나도’ 남기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십니다. 죄는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가르치며 또 죄를 낳습니다. 그래서 진멸은 반복해서 죄로 끌어가는 환경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산속에 들어가거나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보다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결국 죄를 진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진멸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헤렘을 할 수 없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진멸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진멸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죄와 싸워 이기려 하기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셋째, “생명나무”는 살려둬야 합니다.고대 전쟁은 성읍을 포위하고 주변의 과수원과 나무를 먼저 없애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무는 찍어내지 말라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 즉 생명에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의 승리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전쟁이 끝난 뒤까지, 다음 세대의 생명까지 바라보십니다. 이것이 세속사와 구속사의 차이입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에덴의 생명나무로 시작해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로 끝나고, 그 사이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십자가’ 나무가 있습니다.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내어 전쟁 기구로 만들어 ‘쓸지니라’라고 하십니다.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는 부모 세대를, 과실을 맺는 나무는 다음 세대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찍힘 당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쟁은 내가 이겨서 끝나는 전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다음 세대를 살리는 전쟁입니다.공동체 고백은 자폐아들을 둔 어머니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아이와 평생 살 걸 생각하니 너무 두려워 매일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부부목장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아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지하 주차장의 깜깜한 차 안에서 아이에게 소리치고 울부짖다가 ‘하나님, 예배드리는 것까지 막으시면 너무 한 거 아니에요?’ 하며 큐티책을 폈는데, 그날 말씀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였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가는 것보다 100% 옳으신 하나님이 주신 이 환경에 순종하겠다고 눈물로 고백하자 아들은 “올라가자”라고 했습니다. 청소년이 된 아들은 100kg이 넘는 큰 몸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며 자해했고, 보다 못해 말리면 저를 때립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무너진 적도 있지만, 오늘 말씀에 “두려워하지 말라. 너와 함께하신다”라고 합니다. 그저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고, 넌 혼자가 아니고 나도 함께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보석 아들’ 덕분에 공부 잘하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복인 줄 알았던 세상 가치관이 깨지고 가족 모두 예배에 딱 붙어가는 최고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이것이 진정한 ‘샬롬’, 화평의 선언입니다. 생명나무 같은 아들이 화평의 선물이 되어 온 가족이 회개하고 천국을 누리게 된 줄 믿습니다.여러분, 화평을 선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일평생 죄를 진멸하며 살아가는 최종적인 목적은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해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찍혀지는 나무가 되어 다음 세대의 생명나무를 살리는 데 쓰임 받고 하나님과 “샬롬” 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