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이르리니]
최대규 목사
렘 49:1~6
여러분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으신가요? 반대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날도 있으신가요?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바로 ‘하나님의 때’입니다.
2절에 "보라 날이 이르리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라’는 분명히 일어날 것에 대한 선언이고, ‘날이 이르리니’는 하나님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은 암몬에 대한 심판 예언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어떤 날인지, 우리가 어떤 날을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날은 주님이 점령하시는 날입니다.
암몬은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 혈연적으로는 형제 민족이었으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대립해 왔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요단 동편 갓 지파가 포로로 끌려간 후, 암몬은 그 땅을 점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두고 “말감이 갓을 점령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말감은 몰렉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암몬이 아니라 암몬의 신이 이 땅을 점령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침탈이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우상 숭배의 결과임을 드러냅니다.
이 숭배의 가장 잔인한 점은 자녀를 불 가운데로 내던지고 지나가게 하는 인신 제사였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은 부모가 자신의 욕망과 대리만족을 위해 자녀를 세상 성공이라는 불구덩이로 밀어 넣고 아이의 영혼과 관계 신앙이 타버리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몰렉 숭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안에 꼭꼭 숨겨져 있는 욕심을 공동체에 묻고 나누며 밖으로 꺼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점령하다’라는 히브리어는 ‘상속하다’라는 뜻을 지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하나님이 아닌 우상이 주인 행세하고 있는 상태를 고발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날에 영원할 것 같았던 암몬에게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2절에 "점령당했던 그자를 다시
점령하리라"라고 하시는데, 암몬에게 심판의 날인 그날이 이스라엘에는 구원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암몬 우상에 의해 더럽혀지고 짓밟힌 그 땅이 고난과 수치의 모든 시간을 통과한 후,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땅이 됩니다.
둘째, 그날은 의지하던 자랑이 무너지는 날입니다.
랍바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과 같은 곳으로 ‘대단한 자, 위대한 도시’라는 뜻입니다. 랍바는 천혜의 요새로 얍복강 살류에 있어서 물이 잘 흘러들었고, 골짜기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암몬이 점령한 갓지파의 땅 길르앗 지파의 땅은 황금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약탈한 땅에서 부를 축적하며 교만하여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느냐”라고 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환경과 조건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한 교만을 책망하십니다.
3절에 심판의 날에 암몬은 슬피 울고, 부르짖고, 애통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비명과 도움 요청을 의미합니다. 과거 말감 숭배 속에서 북소리로 가려 외면했던 아이들의 비명이 이제 그들 자신의 입에서 터져 나오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부르짖음을 단순한 고통의 외침이 아니라 회개로 나아가게 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의지하던 자랑이 무너질 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회개의 길을 여십니다.
셋째, 그날은 '그러나' 긍휼을 베푸시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도, 그 백성을 돌이키게 하려고 도구로 쓰실 수밖에 없는 암몬도, 모두가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암몬은 심판받아 마땅한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은 말씀의 끝에서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암몬을 ‘패역한 딸’이라 부르십니다. 패역하다’와 ‘돌아오다’는 같은 뿌리의 단어로, 하나님께 등을 돌린 존재를 다시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암몬을 '패역한 딸'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숨겨진 사랑 표현입니다.
우리의 삶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사실 다 망해도 할 말 없는 인생인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과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망해도 할 말 없는 인생들을 찾아오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올 수 있도록 직접 찾아와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나는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먼저 나를 자녀라 부르시면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제 딸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딸이 우울증 약을 과다 복용한 사건으로 학교의 연락을 받고 저는 큰 충격 속에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학교를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고 딸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딸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저는 처음으로 꾸짖기보다 딸의 아픔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딸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세상의 기준으로 붙잡고 있던 제 욕심을 회개하였고, 딸의 사건을 말씀 앞으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치료와 가족 큐티를 병행하며 딸은 자신의 불안과 친구 집착을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이 그 마음에 찾아오셨습니다.
이후 딸은 청소년 공동체에서 간증하며, 이제는 아픈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생명을 살리는 아이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공동체와 목장의 기도를 통해 주님이 친히 이루신 은혜입니다.
여러분, “그날이 이르리니”는 멸망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점령하시고, 자랑을 무너뜨리시며, 결국 긍휼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주시는 그날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님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