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흥왕과 세력]
강승현 목사
행 19:8~20
할렐루야! 강승현 목사입니다. 지난 4년 동안 우리들교회에서 많은 사랑과 귀한 양육을 받았고, 이제 경북 영주에 있는 9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풍기 제일 교회' 담임목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 부임 초창기에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는 ‘풀 소유자’였는데, 지금은 구속사 복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미니멀 라이프 주의자’로 변화되었습니다. 2021년 12월, 제가 휘문채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추운 날씨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낯선 분위기 속에서 어색함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말씀으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생겼고, 말씀의 흥왕과 세력이 자라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차 2차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니며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예수 이름의 복음, 곧 구속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여정은 박해와 감옥,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 속에서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본문을 통해 어떻게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 서원’이 필요합니다.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중심에는 에베소가 있었고, 그는 그곳에서 석 달 동안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았고, 오히려 복음을 비방했습니다.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석 달 동안 복음을 들었어도 마음이 굳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율법적 고정관념과 할례 구원의 틀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굳은 마음은 곧바로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회당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말씀을 전합니다.
‘서원’은 복음을 듣고 믿고 누리는 자리입니다. 우리들교회처럼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 앞에 서는 공동체가 바로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얼마 전, 저는 담임목사님이 하시는 집회에 수행을 맡았는데, 3박4일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께서 저에게 최고의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강 목사님! 목사님은 열심히 하는 데 불편해요.” 저는 역할에만 충실했고 인격적 동행을 놓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며 제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이 조금씩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여름, 청년들과 함께 전라도 노화도에 국내 TT를 다녀왔습니다. 한 청년이 저에게 "목사님은 사역이 시작되면 일 중심 모드로 바뀌시네요. 그러지 마시고 저희랑 즐기고 누리다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청년의 말이 “승현아, 너는 나의 아들로서 이 자리에서 살아난 것을 누리고 즐기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이후 일정들은 청년들과 함께 누리며 살아난 모습을 간증으로 나누었습니다.
둘째,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이어야 합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은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전했고,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손과 손수건, 앞치마를 통해 병을 고치고 악귀를 내쫓는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에베소의 문화에 맞춘 신비적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각 지역의 특성과 문화에 맞게 맞춤형으로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오늘날 손과 손수건, 앞치마는 무엇일까요? 바로 ‘손이 가는 수고’입니다. 직장에서 지친 집사님에게 붙어만 있으라며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목장, 이혼 위기의 가정에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목장, 중독과 폭력으로 무너진 가정을 밤낮없이 심방하며 막아주는 앞치마 같은 목장이 필요합니다. 바울의 손에서 능력이 흘러갔듯이 목자의 손과 목원들의 손에서 위로와 격려, 공감과 중보가 흘러가서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가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목장은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최고의 현장입니다. 성도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 입으로만 “어떡하니? 힘들겠다.” 하는 게 아니라, 손이 가는 수고로 손수건을 가지고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그 고난의 현장에 가서 돕는 것이 말씀이 흥왕하고 세력이 커가는 것입니다.
셋째,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자복의 의미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는 고백으로, 헬라어로 ‘같이 말하다’, ‘공개적으로 인정하다’는 뜻입니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자복은 단순한 도덕적 회개가 아니라,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무너졌고 나 때문에 교회가 아픕니다"라고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고백이 바로 ‘자복’입니다.
혼자 끙끙 앓는 회개가 아니라 목장과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 말씀의 흥왕과 세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값을 지불하는 회개는 자복의 열매입니다. 자복했는지 아니면 후회하는 도덕적 회개인지 알 수 있는 분별의 기준은 값을 치렀는가입니다. 에베소에서 마술하던 사람들이 책을 모아 불태웠는데, 그 값이 은 오만 드라크마, 오늘날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재산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값을 지불하는 자복의 열매입니다.
이렇게 회개의 고백도, 열매도 드러내야 합니다.
이번 목세에 처음 참석하신 목사님이 목장 탐방을 가셔서 나눠주신 내용입니다.
아내와 함께 사역하며 ‘10년 안에 교회를 건축하자’는 비전을 품고 당시 유행하던 셀 목회를 도입하여 사역을 시작했고 교회가 부흥하는 듯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숫자 중심의 사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 안에 분란이 생기고 가정마다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성도들이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저는 큰 낙심에 빠졌고 회복하려 해도 다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며 목회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둘째 딸이 뇌종양 진단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막힌 상황이 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를 묵상하던 중 큐티 책을 통해 성도들과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목세를 통해 ‘나는 의인이다’라는 자기 의가 문제였음을 깨달았고, 진정한 자복은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죄를 드러내고 내 죄를 더욱 깊이 보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 서원에 있는 것을 감사하며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믿고 살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뻣뻣하고 불편한 사람에서 부드럽고 함께 하고 싶은 편한 사람이 되고, 입으로 하는 수고가 아니라 눈물과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적용, 다 같이 모여서 죄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앞치마 같은 적용이 있는 목장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