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김성우 목사
행 14:19~28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 끝나는 부분입니다. 마침, 오늘 담임목사님께서 한 달간의 미주 사역을 우리에게 영상으로 보고해 주셨는데, 믿고 살고 누리는 이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 같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둘러선 제자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은 베드로의 마지막 사역으로 끝을 맺고, 13장부터는 바울 중심의 사도행전이 시작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의 명령'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이 파송되어 1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여정 중에 마가와 요한이 떠나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바울의 긴 설교로 많은 사람들의 회심과 동시에 박해가 일어납니다. 이고니온에서도 제자들이 세워지지만, 핍박이 계속되어 결국 루스드라로 피신하게 되는데, 이곳이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이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 앉은뱅이가 고침받아 일어서고 사람들이 놀랍니다. 그러자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향해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믿는 사람도 나타나지만 거절하고 무시하며 심지어는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이 증거되고 있구나!’ 기뻐하면 됩니다.
우리는 죽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들어감과 동시에 임하는 겁니다. C.S.루이스의 저서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지옥문은 안에서 잠긴다고 표현합니다. 자기 선택과 집착으로 스스로 그곳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나중에 가야 할 실존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내게 주신 말씀으로 오늘 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확장됩니다. 이때 가장 반발하는 것이 바로 ‘내 자아와 욕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될 때 충돌하고 돌로 치는 박해가 일어나면 ‘아!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 가운데 임하고 있구나!’라고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돌로 침을 받았는데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 알 수 없는 폭행과 돌이 날아오는 그곳, 루스드라로 복음을 위해 다시 들어갑니다. 자신이 살인자요, 박해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깨달아지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돌로 맞는 그 현장,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곳을 둘러선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 때문에 돌을 잘 맞고 있을 때 내 옆의 한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갑니다.
한 집사님은 남편이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고도 여전히 바람을 피우자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이 남편에게 마음으로 돌을 던졌음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사업이 망하고 돈이 사라질 때 죽고 싶었다는 집사님들의 간증을 들으며 힘들었을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고, 죽지 않고 곁을 지켜준 남편이 감사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내 죄가 보이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내 죄가 깨달아지는 만큼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돌아가야 합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을 맞고 그 성에 들어갔다가 1차 선교 종착지인 더베까지 간 바울과 바나바는 파송지였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으로 그리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되돌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니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라는 말씀은 조건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원어의 ‘들어가다’는 아오리스트 시제(무정 시제)로 과거, 현재, 미래의 한 시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났고 반드시 일어날 사실을 뜻합니다.
환난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바울이 “돌아갔다”라고 한 것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덮어둔 상처와 단절의 자리로 돌아가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말씀으로 직면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내 삶을 해석하고 다른 이를 살리는 약재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어 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힘이 듭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싫었는데, 작년에 담임목사님이 제게 고등부에 가라고 해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등부를 섬기며 심방을 가고 저와 비슷한 시절을 겪고 있는 아이들의 아픔을 고백하는 것을 들으며 제게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셋째, 보고할 교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버가로, 다시 앗달리아로 가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옵니다. 이로써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 마무리됩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기록된 것처럼 수리아 안디옥교회에는 인종, 계층,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였습니다. 우리의 목장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하나님께 파송 받고 돌아오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27절)” 선교여행은 바울과 바나바가 했지만, 목숨까지 내어놓은 수고와 영광스러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보고합니다. 우리 삶의 긴 여정 가운데 있는 환난은 복음 밖의 이방인이었던 내 삶에 문을 여시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이 일들을 우리는 평생 보고해야 합니다. 이 간증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복음 문도 열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 보고의 상급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이미 상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임했기에 내 옆의 이방인인 내 가족 또한 이곳으로 들어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실 천국이 이미 임한 우리들은 안디옥 같은 목장에 모여 추석에 일어난 모든 일들, 내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고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 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바울처럼 내가 돌에 맞고 있으면 그것을 보고 둘러서 있던 그 한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내가 외면하고 덮어 두었던 아픔과 실패의 자리로 돌아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간증할 때,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을 믿음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