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흥왕하더라]
김성우 목사
행 12:18~24
사도행전 12장에는 전무후무한 박해가 시작됩니다. 이전에는 대제사장 산헤드린 공회원이 박해했다면 이제는 국가가 개입해서 박해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박해가 심하던 그때 12장의 마지막은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더라.로 끝납니다. 이것이 우리 삶과 말씀 묵상하는 성도의 결론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내 모든 힘이 빠지고 내 생각이 무너져버린 때에 흥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묵상한다면 우리 삶의 결론은 말씀이 흥왕하여 더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가정, 그리고 이 나라에 말씀이 흥왕하기 위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본문을 통해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소동이 흥왕합니다.
오늘 등장하는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베드로를 투옥시켰는데, 베드로는 지하 감옥에 갇혀 풀려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의 사자로 인해 풀려났습니다. 날이 새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인들과 헤롯 진영에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언제 소동합니까? 내가 믿었던 것들이 완전히 흔들릴 때 소동합니다. 우리는 이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소동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소동을 제거하려고 하고 믿을만한 것들을 계속 찾아다니지만, 이 세상에 요동치 않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근거를 딛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변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내 인생에 소동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아! 이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구나 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에 시선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동화책에 호랑이와 멍멍이가 나와 없다, 없다 하다가 까꿍! 하고 다시 나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작가는 단순하게 썼지만, 아이들은 이 책을 너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들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세상 전부이고, 엄마가 안 보이면 세상이 사라진 것 같다가, 다시 까꿍! 하고 나타나면 사라졌던 우주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삶이 흔들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동이 있지만, 아침에 말씀을 펼치면 하나님이 까꿍 하시며 나 여기 있다 하십니다.
추석 명절에 많은 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날이 새매, 알지 못하여' 하며 소동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소동이 흥왕할 때 말씀을 펴야 합니다. 성도님 모두가 말씀을 펼쳐 그럴 수 있구나로 해석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권력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일에 소동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권력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오늘 헤롯이 어떻게 하나요? 권력이 있으니 베드로를 놓친 군인들을 심문하여 죽이고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갑니다. 그리고 두로와 시돈을 노여워합니다.
나에게 권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척도는 내가 화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낼 수 있다면 나는 권력자입니다.
헤롯은 어디에서 권세를 받았습니까? 그는 동기동창이었던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 황제의 권세를 입고 교회를 핍박하고 두로와 시돈을 압박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만약 내가 피해를 보았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전할 권세를 주신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당한 피해를 아시고 '나도 너와 같은 피해자이다, 너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라고 하십니다.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 우리 안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다면 이것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명절에 각자의 가이사랴로 내려가야 합니다. 나를 기념하고 내 목적을 위해서 가이사랴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을 위해 가는 발걸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권세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셋째, 칭찬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헤롯이 #039날을 택해서#039 왕복을 입고 연설을 합니다. 자기의 권력을 가지고 택한 날이 자신이 죽는 날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으로 날을 택해야 합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헤롯왕이 그냥 왕복이 아니라 은빛 옷을 입었고, 햇빛에 반짝거리는 옷과 탁월한 연설로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벌레에 먹혀 죽습니다. 헤롯은 사람들이 그가 신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내가 신이 맞다'라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모든 영광을 자기가 취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칭찬이 들릴 때 우리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알고, 말씀 앞에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내 속에 어떤 벌레가 가득한지 검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의 그 벌레로 말미암아 죽어버립니다.
저는 칭찬 앞에서 쉽게 교만해 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나르시시스트라고 했을 때, 처음엔 칭찬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자기애가 과도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사실은 깊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인정과 반응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보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의 뿌리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성공도 내가 했다라고 착각하며 영광을 가로챕니다. 그 교만이 바로 내가 신이다 하는 헤롯의 모습입니다. 헤롯 역시 깊은 열등감과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던 불안과 교만, 열등감이라는 벌레가 그를 삼켜버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은 헤롯으로 시작해, 말씀으로 끝납니다. 세속사와 상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합니다.
여러분, 소동이 일어나야 우리는 소동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권력과 권세가 주어졌다면 이제는 말씀을 전하고, 흥왕하게 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칭찬받을 때 말씀 보며 벌레같은 나의 수치와 연약함을 목장과 가정에 오픈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야 됩니다. 이것이 말씀의 흥왕입니다. 내 안에 이 말씀이 있으면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씀 묵상을 통해서 이 하나님 나라의 흥왕이 우리 삶 속에 임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