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27 복음으로 인한 소동 사동행전19:21~31
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모든 일에 끝에는 돈이 있다는 것이 인정이 됩니까? 나는 성령의 소동을 합니까? 내 욕심으로 소동을 합니까? 소동 가운데 나를 지켜주는 동역자와 지체가 있습니까? 내가 가야할 로마(사명지)는 어디 입니까?
몇년 전 성지순례에 보았던 에베소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 합니다. 200년이 지나 아데미 신전과 두란노서원은 무너지고 일부 빼대만 남았지만 그 길을 가는 길에 반듯한 돌로 도로가 만들어졌고 그 시대에 두란노 서원이 3층(??)의 건물로 웅장한 모습은 해질녁 석양 빛과 함께 강렬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학문과 지식이 넘쳐난 에베소 우상이 아데미 여신의 음란한 모습은 지금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서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때는 바울이 이곳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한 날 한 날의 삶보다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더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학문과 역사의 도시에 우상을 섬기던 곳에서 복음이 들어가니 30~50억의 가치가 있는 책을 불사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그 복음의 자리에서 여전히 풍족한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여 그럴듯한 말과 명분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옳고 그름이 강하고 내 주장이 강한 사람이라 늘 내 열심가운데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상황을 일로 생각하고 편하게 누리는 삶이 안되니 굳은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참 힘들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졌습니다. 언젠가 공동체에서 "김순정 집사님은 죄는 정말 잘 깨달으시는데 모든 일이 너무 심각해요"라는 말을 듣고 유머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을 하였는데 죄는 깨달지만 그것을 삶으로 적용하며 부드러워지 않으니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삶이 안되어 매사에 모든 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말 아들이 준비한 시험을 통해 아들의 합격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아들에게 어떤 엄마인가를 더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아들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 생각하며 은장색 장사와 같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욕심이 앞서니 아들의 구원보다 합격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1년의 시간을 저희 부부에게 더 허락하셨고, 아들의 시험이 끝난 후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엄마의 소원을 이야기 하고 거절의 사건에도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아들의 눈 높이 맞게 아들 시험이 끝나면 함께 마시려고 준비한 산삼주를 먹자고 하고 적잖은 용돈을 챙겨주며 전도축제일에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은 아들의 굳은 마음이 순종의 마음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양육해 가시고 어떤 말도 받아낼 수 있는 때가 찰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 훈련의 시간을 잘 감당하며 내가 가야할 사명지를 순종하며 가겠습니다. 이제는 내 욕심을 만든 소동이 아닌 성령님이 말씀 앞에 주시는 성령의 소동이 복음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