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5.토요일.사도행전 18장 24절-19장 7절 성령의 세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가 나오는데 로고스와 에토스와 파토스입니다. 로고스(Logos, Logic(논리)의 어원)는 논리라고 할 수 있고, 에토스(Ethos, ethic(윤리,도덕)의 어원)는 도덕 감성이라고 할 수 있고, 파토스(Pathos, passion(열정)의 어원)는 열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지성, 감정, 의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설득하는 자가 설득 받는 자를 설득시키기 위하여는 반드시 로고스와 에토스와 파토스가 총동원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설득시키는 과정이 신앙의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말씀도 있어야 하고 예수 만나게 하는 사건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령님이 계셔야만 우리가 깨닫고 느끼고 비로소 결단하고 행할 수 있음을 알 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를 믿지만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바울이 그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복음을 전하고 안수하였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사 방언도 예언도 하며 주님을 높여드립니다. 본문을 통해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THINK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 말씀하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지식에서 온전한 진리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렀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아테네와 함께 헬라문명이 가장 융성한 도시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고 저명한 헬라 철학자들이 학술 활동을 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이 출간된 곳도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유대인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직하였을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회개만 있고 죄사함은 없는’ 그의 설교에 무언가가 빠져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도는 십자가의 도,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되심과 그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구원의 도입니다. 은혜받은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고 추천해주었습니다.그가 가니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으로 유대인의 말을 힘있게 이겼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구속사의 예언을 풀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힘있게 증거하여 유대인들이 반박할 수 없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아볼로가 아가야 지방 고린도에 있었을 때에 바울이 아시아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와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제자들의 모습이 근엄한 수도자들처럼 보였습니다. 뭔가가 빠져있음을 눈치채고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 제자들이 아볼로에게서 구약성경과 오실 예수를 전파하는 요한의 세례까지만 배워 율법적이고 도덕적이고 죄를 회개하는 금욕의 삶에 치중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자유도 기쁨도 열정도 없었고 죄와의 치열한 싸움으로 피곤하고 지친 다크서클이 짙게 드러워져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묻자 “요한의 세례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죄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을 들어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죄인된 나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고 주님이 이루신 용서와 치료와 회복과 구원을 누리는 것이 복음이 주는 자유입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그들이 바울이 전하여준 복음을 받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이 나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나를 살리기 위해 대신 살아나심임을 믿고 주 예수를 나의 구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예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며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증거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친히 성령세례를 베푸심으로 그들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성령께서 하시는 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방언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이고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전하여 다른 이들을 설득시켰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의 심령에 오시니 바울이 전한 복음을 심령으로 깨닫고 지 정 의가 말씀으로 설득되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내면과 표정과 삶과 말로서 설득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는데 이들이 나중에 에베소 두란노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 아시아 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두루 전하는 사역에 쓰임받았습니다.
선교단체에서 35년 평신도로 대학생 제자양성역사를 섬기다가 은행생활 막바지에 우리들교회에 와서 신대원 3년 과정을 마치고 사역의 길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봉사 지원도 사역지원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아 계속 헛물만 들이켰습니다. 이번에도 세 번째 사역지원서를 낸 후, 초원님 처방대로 봉사지원을 했다가 휘문 1부 6시 50분 예배 안내위원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주일새벽부터 오후 4시 초원부목자 모임까지 하루종일 섬기다 보니 한 주 내내 피곤하고 졸립고 몸에 이상반응까지 생겼습니다. 게다가 목요목장 끝나고 다음날 이메일을 확인해 보니 목요일날 교회로부터 사역지원이 거절된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힘이 쭉 빠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주 가정예배에서 전해야 할 말씀이 마태복음 시리즈 천국을 보여주는 인생 중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쳅터였습니다. 거절도 응답이라는 말과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성전문지기(안내위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저의 지혜와 결심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게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사 성령님의 로고스 말씀과 에토스(성령의 마음)과 파토스(성령의 열심)이 나의 지 정 의에 온전히 역사하셔야만이 제가 성령의 얼굴이 되어 안내의 사명, 더 나아가 표정과 삶과 말과 행함으로 복음 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제가 다가오는 전도 축제에 오랫동안 말씀의 씨, 기도의 씨를 뿌렸던 직장 후배와 그의 아내와 자녀를 초청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기름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적용하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맡기신 주일예배 안내 역활을 감당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