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자녀에게 대접받고 싶다면

아들이 중학생 때 남편이 급성 간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오직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고 남편은 주님을 만나고 떠났기에 30대 중반에 혼자 되었지만 나에게는 남편의 죽음이 감격의 구원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창 사춘기를 보내던 아들은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이 무척 힘겨웠던 모양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메이커’에 집착하고 원하는 운동화를 사주지 않는다고 차를 긁어놓기도 했다.
그런 아들에게 내가 날마다 했던 잔소리(?)는 하든 안 하든 한결같이 방문을 ‘똑똑’ 두드리며 ‘큐티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로서 강권한 것이 있다면 ‘교회 수련회에 참석해라’ ‘예배에 늦지 마라’ 등이었다. 아들은 짜증을 내기도 하고 투덜거리기도 해 엄마에 대한 불만이 많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아들이 군 제대 후 유학 가 있던 때에 짐을 정리하다가 아들의 그 시절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엄마에 대한 불만의 표현은 전혀 없고 ‘엄마에게 순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죄송하다.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엄마를 이렇게 대접해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은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다(마 7:12). 부모로서 자녀에게 대접을 받고 싶다면 자녀가 공부를 안 하고 속을 썩여도 한결같은 태도로 부모로서 받고 싶은 대접을 먼저 해야 한다.
자녀를 위해 대화시간을 늘리고 친한 친구 이름을 외우는 등의 노력도 좋지만 내 자녀에 대한 최고의 대접은 주변의 다른 힘든 아이들,이웃들을 전도하고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다. 내 자녀도 돌보아야 하지만 힘든 사람들을 돕고 헌신할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반드시 자녀에게 대접 받는 부모가 될 것이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어 받는 대접은 일시적이다. 부모가 학벌이 좋고 억대 유산을 남겼어도 그것 때문에 부모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녀들간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례도 많다.
아들은 날마다 큐티하자,예배 드리자 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사랑으로 알아주었다. 소속이 없어 힘들어 하는 재수생과 입시생,힘든 지체들에게 우리집을 내놓고 16년 동안 큐티로 양육했더니 엄마인 나를 사랑으로 대접해준 것이다. 그것이 나와 아들,서로에게 최고의 대접이 되었다.
김양재(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