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좁은 길을 지나 영원한 생명으로
이 맘 때면 몇 해 전 하나님 곁으로 간 혜옥 자매가 더욱 그리워진다. 3년의 암 투병기간 동안 교회 안에서 은혜와 사랑을 나누던 혜옥이, 서른아홉 나이에 미혼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혜옥이 만큼 행복하게 살다가 행복하게 떠난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직장암으로 투병하다 숨을 거두었을 때 장례식장을 지켜줄 혈육이라곤 세 명의 형제뿐이었다. 그러나 혜옥이의 장례식장은 찾아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투병기간 내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간증을 나누었기에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 분도 있었다. 혜옥이의 천국 길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장례식장 복도가 꽉 막힐 정도였다. 혜옥이에게 이 세상 명예가 있어서 그랬겠는가? 유력한 남편도, 부모도, 세상에 내어놓을 돈도 지위도 없는 혜옥이의 장례식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마지막 가는 길까지 최고의 사랑과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혜옥이가 암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갔기 때문이다. 처음 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혜옥이는 문병을 온 지체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전에는 수치인 줄도 모르고 육체를 마음대로 다루었는데 간호사들 앞에서 소변 길어내는 연습을 하며 수치를 느꼈다고 했다. 처녀로서 자신의 삶을 낱낱이 나누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 안에서 아픔도 기쁨도 숨김없이 나눠준 것이 혜옥이가 우리에게 해준 최고의 대접이었다.
좁고 협착한 길
입에 발린 말과 테크닉적인 사교(私交) 기술로 나를 대접해주는 것이 좋은 대접이 아니다. 모든 일에 나에게 진실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나를 대접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은 죄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진실함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최고의 대접인 것이다. 자식과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 받고 싶어서 평생 돈을 벌고, 공부를 시키고, 출세를 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고 간다고 하자. 그렇다고 내 장례식에 몇 사람이나 와줄 것 같은가? 진심으로 나의 삶과 죽음을 공감하고 나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사투를 벌이며 지나야 하는 엄마의 산도(産道)는 참으로 좁은 길이다. 무언가를 가지고는 지나올 수가 없다. 빈손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 좁고 협착한 길을 지나오면 어마어마한 생명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참 좁고 험한 곳으로 오셔서, 좁고 험한 곳에 머물다 가셨다. 혜옥이도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암의 좁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 길을 지나면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암에 걸려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누구보다 성공한 삶을 살고 갔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혜옥이에게 오신 예수님, 혜옥이의 기쁨과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신 예수님의 생명이 오늘 이 땅에 임하기를 원한다. 질병과 부도와 배신과 실패,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 속에서 오직 살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멸망의 넓은 문을 떠나 생명의 좁은 문을 선택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