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나그네
91년 KOSTA(국제유학생수련회) 강사로 처음 초청받았을 때의 일이다. 공항에 가서 보니 유명한 목사님들 사이에서 내가 홍일점인 여자 강사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나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내 손에 들린 커다란 짐 가방이었다. 다들 남자 분이기도 하셨지만 워낙 해외 집회도 자주 다니시고 세련된 분들이라 슈트케이스에 양복 한 벌씩만 넣어 오셨는데, 나는 멋도 모르고 화물로 부쳐야 하는 큰 가방에 짐을 싸들고 간 것이다. 그래서 도착지 공항에서 일행 모두가 내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유명한 목사님들이 나 때문에 일렬로 기다려주시니 얼마나 송구스러웠겠는가. 그 후로는 나도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한 벌 옷만 챙겨서 여행길에 오르게 됐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1~2).
초대교회 당시 극심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 있는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쓴 편지다. 고난이 끝날 것이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심한 박해가 있을 것이고 흩어진 나그네의 삶이 계속될 것이기에 위로와 권면과 사랑의 편지를 썼다.
우리의 신분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건 못 누리건 우리는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나그네이다. 그런데 말로는 나그네, 나그네 하면서도 잠깐 여행길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많다. 세련된 사람일수록 여행할 때의 짐이 간단한 법인데 이것도 아쉽고 저것도 아쉬워서 번번이 미련한 수고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로서 신분 의식이 확실한 사람은 이 땅의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육적으로는 흩어진 나그네일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다. 그냥 택하심을 입은 자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나’이다.
한 마디로 나는 성부, 성자, 성령이 총동원되어 택한 사람이다. 나는 성부가 택하시고 성령이 도와주시는 신분이다. 성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생명보다 귀한 사랑을 받는 신분이다. 그렇게 엄청난 신분이기 때문에 대단한 고난 가운데에 있어도, 고단한 나그네 길에 있어도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라는 인사를 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풍성함으로 가득한 감사의 계절이다. 무엇에 대한 감사로 이 계절을 맞고 있는가. 집을 장만해서, 승진이 돼서, 성적이 올라서, 병이 나아서, 뜻하지 않은 돈이 생겨서 감사한가?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물론 감사해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감사로는 진정한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없다. 목숨이 위태로운 고통 가운데에도 ‘더욱 많은’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 소망, 영원한 천국의 소망뿐이다.
이 땅에서 얻은 것이 없어도 나의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행복한 나그네. 가장 좋은 것을 집(천국)에 두었기에 아무리 좋은 것으로 유혹해도 안주하지 않고 걸어가는 멋있는 나그네. 빈손과 빈 가방이기에 누구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믿음의 길을 가는 영적 나그네의 삶이야말로 아무리 감사드려도 부족한 나의 감사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