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사건을 해석하는 지혜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다 결혼한 자매가 있다. 결혼으로 독립을 해서 자신만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는데 친정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어머니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울며불며 전화를 걸어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이사까지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행려병자로 병원에 실려 가는 바람에 경찰에서 보호자를 추적하게 되고, 결국 자매에게 아버지를 모셔가라는 연락이 왔다. 더 이상 도울 마음도 여유도 없어진 자매는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느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남동생도 있는데 출가한 딸인 자신이 왜 친정의 어려움을 책임져야 하는지, 그것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아무리 기도를 해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6~7).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그 뜻을 깨닫기 힘든 오묘한 사건이 찾아온다. ‘내가 선택해서 그런 부모를 만난 것도 아닌데’ ‘나는 아들도 아닌데’ ‘나 살기도 힘이 드는데…’ ‘왜?’ 내가 희생하고 섬겨야하는지 알 수 없는 힘든 환경이 계속 된다. 그럴 때 세상 지식과 처세술은 이렇게 처방을 내릴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인연을 끊어야지. 그 아버지 때문에 시댁 식구들한테도 창피하고 무슨 망신이람. 휴대폰 번호를 다시 바꾸고 아예 다른 사람 명의로 해버려.”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이 힘들면 “참지 말고 이혼해.”, 직장생활이 힘들면 “당장 그만둬.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고생을 해.”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해석이고 처방이다.
하지만 나는 행려병자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는지 묻는 자매에게 “당장 가서 모셔오라.”고 권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헌신에 하나님께서 자매를 특별히 뽑아주셨다고, 그래서 자매야 말로 온 집안의 축복의 통로라고 말해주었다. 힘든 환경과 싫은 사람을 버리고, 떠나고, 외면하는 것이 살 길이 아니라 그들을 품고 가는 것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구원의 길이라고 거듭 권면했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라
그 길이 힘든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권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자매와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친정에서 딸 넷 중에 막내로 태어났는데 고등학교 때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대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친정 일을 내 일로 여기며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성경을 보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누구도 섬기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묘한 일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식과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에게 전문적인 학식이 있어서 누군가를 상담하고 권하는 자가 된 것이 아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성경을 보고 성경 한 절이라도 삶에 적용하라고 권했을 때, 이혼하려던 부부가 합쳐지고 상처로 깨어졌던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보여주셨다.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고 살아난 간증이 있으면 어떤 오묘한 것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된다.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훈계를 멸시치 않고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 나와 가정을 살리는 생명의 지혜를 부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