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집사님이 동창회에 다녀와서는 마음이 우울해졌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 자신보다 공부도 못 했고, 인물도 못했던 친구가 있는데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나타나서는 좋은 집과 좋은 차와 좋은 옷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부간의 금실도 좋은 것 같고, 아이들도 공부를 잘해서 명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신앙인으로서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너나 잘 믿어라' 할 것 같아서 입을 떼지 못했다. ‘저렇게 아쉬운 것 없고 모든 것을 가진 친구에게 복음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씁쓸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롬1:7)
인류가 세운 나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평가되는 나라가 사도 바울 당시의 로마였다. 강한 군사력과 정비된 도로, 발전된 법률을 갖추고, 식민지 출신을 그 지역의 왕으로 세우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히브리 민족보다 여성 차별이 없는 민주화된 나라였다. 그러니 요즘 사람들이 미국 시민권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그 시대에는 모두가 로마의 시민이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 로마에 무슨 복음이, 더 이상의 무슨 기쁜 소식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나 로마에도 복음이 필요하다.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죽음을 각오한 사도로 스스로 자처한 이유는 강대국 로마에도 절실하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다지도 자랑하던 로마 시민권과 자랑하던 학식으로 예수님 잘 믿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우리의 권세와 학벌과 능력으로 나도 모르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진정 필요한 것은 복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많이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죄로 인한 고통이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이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죄를 깨달아야 한다. 내 죄를 깨닫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를 체험하면 무엇을 하든 구원을 목적으로 하게 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을 누릴 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던 내 지식과 능력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쓰임 받게 된다.
로마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주신다. 우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이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신다. 로마인에게도, 지식인에게도, 재벌에게도, 박사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 복음만이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며,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