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는 부부
몇 년 전 외국에서 <남녀의 차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본 사람들은 금세 어리둥절해졌다.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글씨가 인쇄되지 않은 백지만 계속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파본인줄 알고 교환을 요청했는데 거기에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남자는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여자도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남녀가 그토록 서로를 모르는데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서로를 모른 채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평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난이겠는가.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 3:18).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주신 언어는 ‘복종의 언어’다. 남자가 우월하기 때문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다. 비록 남편에게 약점이 있고 아쉬운 면이 있을지라도 남편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아내로서 마땅한 일이다. 가정에서 왕처럼 대접받을 때 남편들은 비로소 아내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처럼, 아내의 복종의 언어는 남편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남편과 중매로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처음 선을 보고 나서 남편은 내가 착하고 명랑해 보여서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남편이 자신의 불같은 성격 때문에 그 성격을 잘 받아줄 것 같은 나를 택했다는 걸 알게 됐다. 본인의 약점을 알고 그 약점으로 나를 택한 것이다. 그러니 그 약점이 아니었으면 나는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시집살이 고난 끝에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도 놓칠 뻔했다. 거듭나기 전에는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분이 풀리지 않는 남편의 약점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남편의 약점이야말로 나를 구원으로 인도한 축복의 통로였다.
복종과 사랑의 언어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남편 친구의 재혼 소식을 들은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그 친구는 6년이 걸렸지만 당신은 1년도 못 채우고 재혼하겠지?” 그럴 때 남편이 “무슨 소리, 당신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건강하게 오래 살아줘.”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남편은 이렇게 대답한다. “1년씩이나 갈게 뭐 있냐. 난 6개월 안에 새장가 간다!”
아내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잠을 못자고 슬퍼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무심한 말로 아내를 괴롭게 하고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남자들이 여자의 언어 체계를 이해하고 ‘사랑의 언어’를 쓰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에 남편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교된다(엡 5:25).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입장이 돼주는 성육신의 사랑, 아내를 위해 죽어지는 십자가 사랑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복종의 언어도, 사랑의 언어도 표현할 수 없다. 부부가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언어를 사용할 때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복종과 사랑의 언어를 쓸 수 있다. 달콤한 표현이나 미사여구가 없어도 아내는 남편을 인정하고, 남편은 아내를 용납하는 태도를 보일 때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