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파송된 가족
우리들교회 청년예배에는 ‘적용’ 시간이 있다. 설교가 끝난 후 몇 사람이 올라와서 그날 들은 말씀으로 나눔을 하는 시간이다. 어떤 친구는 은혜를 받아서 눈물로 죄를 고백하고, 또 어떤 친구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기도 한다. 가끔 내내 조느라고 한 마디도 못 들었다는 친구도 있다. 내용이야 어떻든 젊은 청년들의 솔직한 나눔이 예배를 살아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몇 주 전에는 앳된 얼굴의 자매가 적용을 하면서 술 마시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오빠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했다. 오빠가 뒤집어엎은 상을 묵묵히 치우는 엄마를 보며 엄마도 밉고 싫었다고 한다. 그동안 오빠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고 했는데, 인내하기도 사랑하기도 어렵다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4:37)
예수님께서는 믿는 예루살렘을 향해 안타깝게 말씀하신다. 안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믿는 우리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에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라고 하신다.
가족은 구원을 위해 묶어주신 하나님의 공동체다. 영혼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남편과 아내로, 부모자식으로, 형제로 파송해주셨다.
자매는 동네에서 유명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동네에서 유명한 사고뭉치 오빠와 사는 것이 저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오빠도 피해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술을 마시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폭력과 가난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자매를 데리고 가출했던 어머니, 그 힘든 동안을 아버지의 폭력을 받아내며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오빠, 어머니와 다시 합친 후에도 늘 무시하고 대드는 여동생으로 인해 오빠가 상처투성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자매의 눈물과 기도가 있어 그 가정이 회복될 것을 믿는다. 주님의 날개 아래, 자매와 온 식구들이 하나로 모이는 날이 곧 올 것을 믿는다.
온 식구를 괴롭히고 문제만 일으키는 가족이라도 주님은 그들을 주님의 날개 아래 모으기 원하신다. 주님이 모으시는 가족을 내가 돌로 치고 내어 쫓아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모으시는 가족을 이혼으로, 원망과 따돌림으로 흩어서는 안 된다. 구원을 위해 나를 그 집안에 파송하셨다. 구원을 위해 술 마시고, 때리고, 망하고, 병든 식구를 나에게 파송해주셨다. 나와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우리를 묶어주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부르시며 주님의 자녀를 모으시려는 안타까움이 먼저 내 식구들에게 공감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힘든 한 사람을 섬기며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향한 사명으로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