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공은 ‘나’
어느 여성도가 어렵게 이런 고백을 한다. 남편이 예수님을 안 믿는데 직업상(?) 뇌물을 받는 것이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단다. 그렇게 남편이 자신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뇌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같이 교회에 가자.”는 이런 말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누구라고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뇌물을 안 받아서 손해를 보고 일을 못하게 된다면 당장 누가 먹여 살리겠는가 말이다.
구약시대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전,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멸망의 메시지를 외치게 하셨다. 우상숭배와 음란으로 망하기 전에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눈물로 호소하게 하셨다. 그러나 다른 유대 선지자들은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면서 백성들을 안심시킨다. ‘괜찮아. 괜찮아. 뇌물 좀 받는다고 큰 일 나는 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 하면서 예수님을 믿어도 ‘적당히’ 믿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라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적인 지도자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속이 편해진다. 그래서 그 성도처럼 ‘남편이 퇴직하면 교회에 가자고 해야지. 그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해야지.’라고 스스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
날마다 성경을 읽어도 순종하려고 읽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생기지만 가르치려고 읽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안 생긴다. 그것을 실제로 삶에 적용시키는 것 빼고는 안 해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순종에 대해서 분석하고 연구하고 설명한다. 이렇게 많은 공부를 해도 뇌물 하나를 안 받는 것이 힘든 것이다. 뇌물을 안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지만 남편의 돈이 주는 거짓 평안에 나도 속고, 남도 속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에 더욱 종교적으로 열심을 내고 싶고 보이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나 위장된 평화는 힘든 사건이 오면 금세 무너지기에 삶에서 능력이 되지 않는다.
대단한 신분
“주 야훼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사람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겔 5:5~6).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가운데 두시고 열방으로 둘러있게 하셨다. 세상의 중심에 예루살렘을 두고 멸망의 본보기를 보여주신다. 세상의 중심은 예루살렘, 예수님을 믿는 ‘나’이다. 예루살렘을 망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고 율례를 행치 않는 사람들에게 외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망하고 병들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온 집안의 주인공이 되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쳐야 한다. 뇌물을 안 받아서 직업을 잃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먹여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걸 보여줄 책임이 나에게, 우리에게 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신분임을 알고 하나님의 규례를 원칙으로 놓고 갈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 나를 사랑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감독 하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나를 위해 온 우주와 온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