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성령충만, 삶에 충성하는 것>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딤전2:12) 우리들교회 창립 1주년 예배를 드리는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니 지나온 1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되돌아보며 여느 때보다 큰 감격과 기대로 큐티 책을 폈는데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하는 본문에 딱 걸리고 말았다.
그날 나는 큐티 본문 말씀으로 설교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자 목사인 내가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해도 좋을지, 전도대회로 불신자들도 초청해서 예배를 드리는데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지는 않을지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왜 이런 날에 이 말씀을 주셨을까... 피해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여자 목사인 나야말로 이 본문을 설교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닌가.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여자는 오직 종용할지니라"를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사도 바울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특히 성적으로 문란한 에베소 같은 곳에서는 여자들의 위치가 더욱 종속적이었다. 그러니 "남녀가 동등하고, 종이나 자유자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하나"라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과 같은 혁명적인 복음을 들은 여자들이 교회에 오면 얼마나 집에 가기가 싫었겠는가. 죽도록 힘들게 살림해서 무시 받고 사느니 교회에 와서 가르치는 것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창조 질서로는 남자가 먼저이고, 범죄의 순서는 여자가 먼저이기에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딤전2:13~14)
하나님께서는 살림이 우상이셨던 시어머니, 교회든 어디든 외출하는 것을 끔찍히 싫어했던 남편을 통해 나에게 순종의 훈련을 허락하셨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내 교양으로 순종할 때는 편두통에, 위장병으로 온 몸과 마음이 아팠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사랑이 없는 내 자신을 회개하며 순종했더니 무섭게만 느껴졌던 시어머니와도 영적인 나눔이 이루어졌다. 그 때 어머님과 한 방에 누워 나누었던 적나라한 나눔들이 있었기에 나는 어떤 힘든 사람을 만나도 같이 울고, 웃어줄 수 있는 인생이 되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2:15) 예수 믿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역할을 찾는 것이다.
진정한 성령충만은 평범한 자기 삶에 충성하는 것이다. 내가 남편 한 사람, 시어머니 한 사람에 순종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지경을 넓혀서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신다.
아직 유교적 풍토에 젖어서 여성 목회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자 목사인 내가 담임하는 우리들교회를 온갖 매스컴을 동원해 주목받게 하셨다. 열 세 가정이 모여서 개척준비예배를 드렸는데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출석교인 650명을 기록하는 숫자적인 부흥도 보여주셨다.
여성 목사가 목회를 한다고 하니 교회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650여명 성도 중 남성 성도가 반수 가까이 된다. 말씀으로 아내가 변화되었을 때 남편들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저절로 전도가 되었다. 우리들교회 남자 성도들은 직장 상사와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실직, 부도의 문제가 생겨도 여자인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다. 가정에서의 역할 순종은 남자들의 직장생활, 사회생활에 그대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말씀으로 상담이 가능한 것이다.
건물도 없이 학교 식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다른 교회에 비해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우리들교회에는 비교할 수 없는 뜨거움과 충만함이 있다. 성도들에게 본질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순종할 것은 남자와 여자, 자기 역할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열심히 선포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들교회가 가야할 길은 무엇보다도 말씀으로 가정과 교회를 살리는 일임을 믿고 있다.
그 일에 아낌없이 쓰임받고 드려지는 나와 우리들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린다.
- KAICAM (한국독립교회. 선교단체연합회 신문) 2004년 9월 30일자 / 2면 목회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