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문대를 졸업한 후 좋은 집안의 의사 아들과 결혼한 그녀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참 시집 잘 간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는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5년만의 가출과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 자녀들의 연이은 입시 좌절 등 힘겨운 시련으로 가득하다. 평범한 주부에서 부흥하는 개척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기까지,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성경 속의 진리를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며 20년 가까이 단 하루도 빠짐 없이 큐티를 하고 있는 여자, 김양재를 만났다.
120명이 모인 아파트 마가의 다락방을 찾아가다
인터뷰 장소를 결정해야 했을 때, 분위기 좋은 카페나 스튜디오로 정할 수도 있었지만 기자는 굳이 그녀의 집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 여인이 지난 20여 년 간 날마다 말씀 묵상을 해 왔고, 열 개가 넘는 성경 공부 모임이 생겨난 곳, 작년에는 120명의 우리들교회 초대성도들이 모여 가정교회를 시작한 바로 그 현장에 꼭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반포에 위치한 5층 짜리 낡은 아파트 건물의 제일 꼭대기에 산다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더욱 가슴 설레었다.
수수한 옷차림과 옅은 화장의 얼굴,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차분한 움직임. 문을 열며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준 김양재 목사의 첫인상은 ‘편안한 집사님 또는 친구의 어머니 같은, 하지만 전혀 목사님 같지 않은 고운 중년 여인’이다. 카펫이 깔린 거실에는 성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책과 문서가 쌓인 큰 좌탁 하나만이 눈에 들어 올 뿐 별다른 것은 없었다. 김양재 목사는 따스한 햇살이 내비치는 베란다 앞의 그 좌탁에 자리를 잡는다. ‘여기가 바로 내 자리에요’라며. 바로 그 자리에서 날마다 말씀 묵상을 하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교회 개척 후 첫 두 달간은 주일마다 말씀을 선포했으며, 지금도 변함 없이 그 자리에서 설교를 준비하니, 참으로 ‘그녀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새겨진 이 공간의 조금은 특별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지난 해 10월 이곳에서 가졌던 첫 교회창립준비모임의 신발 정리를 담당했던 이지영 간사가 그때를 돌아보며 교회 소식지에 쓴 짧은 글을 보여 주었다.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신발은 처음 봤어요. 솔직히 현관 앞만 정리하면 되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원했던 일이었는데… 아파트 현관 입구는 물론 복도, 아래층계단, 옥상계단 끝까지 꽉 들어찬 신발을 하나하나 정리했지요. 나중에 세어 보니 120 켤레나 되더군요. 하지만 그 신발들을 보면서 느낀 은혜와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답니다. 진동하는 발 냄새까지도 말이에요.”
주방과 거실을 나누는 미닫이문도 떼어 내고 방에다 스피커를 달아서 장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애썼지만 매주 늘어나는 사람들로 인해 다른 교회 건물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아파트에서 예배드린 지 두 달 만에 기적적으로 휘문고등학교의 넓은 식당을 빌려 주일과 수요일 예배를 그곳에서 드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 아직 교육관 건물이 따로 없기에 주일학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모임은 여전히 김양재 목사의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집사님, 앗, 목사님 평범한 아줌마에서 목회자가 되기까지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김양재 목사는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소위 ‘좋은 집안’의 의사 아들과 결혼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호된 시집살이로 인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래도 ‘교양 있는 여자’로써 감히 힘든 내색을 할 수는 없어 꾹꾹 참으며 살다가 결국은 5년 만에 무작정 가출을 해버리는데. 마땅히 갈 곳조차 없어 찾아간 기도원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체험한 그녀는 철저한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기에 이른다. 그 놀라운 은혜의 순간을 어찌 인간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때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 그녀의 중심에는 ‘큐티’가 자리 잡았다.
큐티(Q.T.)는 quiet time의 약자로써, 말 그대로 ‘조용한 시간’을 의미한다. 물론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큐티, 즉 조용한 시간이란 말씀 묵상을 통해 갖는 하나님과의 일대일 교제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80년대 초반,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큐티집이었던 ‘매일성경’을 알게 되면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그 책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큐티를 하게 된 김양재 목사. 당시에는 아무런 내세울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 집사였던 그녀는 말씀으로 인한 감동이 커질수록 전도에 대한 열정도 커지는 것을 경험하며 처음에는 전화로, 나중에는 집을 오픈해서, 사람들에게 말씀 묵상의 은혜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그 사랑하시는 자의 지경을 넓히신다는 것을 다시 확인케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녀가 삼십 대 후반이었을 때 받아들여야 했던 급작스런 남편의 죽음. 놀랍게도 그러한 때에도 그녀의 큐티는 쉼이 없었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날 큐티를 통해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은 공평하시다’라고 말했고, 저는 그대로 받아들였죠. 말씀은 곧 진리니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 남편은 죽어서까지 참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남편과의 사별 이후 한동안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던 자신의 계획과는 달리, 그녀는 당시 출석하던 남서울교회의 재수생 모임을 시작으로 새벽 큐티 모임, 남녀제자반, 학부모 모임 등, 열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큐티 모임을 자신의 아파트에서 인도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근 큰 교회를 빌려 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정기적으로 큐티 강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해외유학생수련회(KOSTA)의 유명 강사로도 활약하며 청년들에게 말씀 묵상의 삶을 도전했다.
그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사역의 범위가 커지고, 더욱 깊이 있고 체계적인 큐티 사역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2000년 7월에 ‘큐티선교회’를 조직한 김양재 목사. 그때부터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지난 4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평신도의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어서 크게 달라진 건 잘 모르겠어요. 주일에 제가 성도들 앞에 서서 말씀을 선포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 외에는. 설교를 하는 것과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또 다르잖아요.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대부분 저를 예전처럼 교회 집사나 이웃집 아줌마 대하듯 하고, 저도 그게 좋은 걸요. 저를 부를 때 ‘집사님, 앗, 목사님’하면서 서로 껄껄 웃어 넘긴답니다.” 20여 년을 평신도 사역자로 지내다가 목회자가 된 지금 달라진 것이 많지 않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말이다. 오래 전부터 영혼 구원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었던 김양재 목사는 주일 설교 시간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고백을 한다. 또한 고난 속에서 지치고 상처 입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 와서 말씀으로 회복되며 겸손과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면서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큐티하다 하나님의 은혜 + 육체의 연습
믿음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매일’, 그것도 ‘십 년’, ‘이십 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분명히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전문 목회자가 아니라면. 고된 시집살이를 하며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서 가사를 돌봐야 했던 김양재 목사는 큐티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먹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지요”라고 했다.
뜨거운 불에 들어가면 쇠처럼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있고, 나무처럼 타서 잿더미가 되는 것이 있듯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고난이라는 변장된 축복이 다가올 때 그것을 잘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하나님의 선택, 그분의 은혜에 달린 것이라는 김양재 목사. “하지만 성경에도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연습’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봐요. 사람이 어떤 육체의 습관을 만들 때도 꾸준히 연습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처음부터 깊은 묵상을 하려 하지 말고 우선은 성경을 조금씩 읽는 것부터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히’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처음에는 파도치는 바닷가를 걷는 것 같다가 점점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혼자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면서 보고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갖도록, 특히 큐티하는 습관을 갖도록 기도하고 가르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큐티는 가장 좋은 ‘생각하는 훈련’이에요. 자연히 아이들이 지혜로워집니다.” 또한, 자신은 워낙에 큐티집이 ‘매일성경’ 하나 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요즘에는 좋은 큐티 교재들이 다양하게 나오니까 그중 하나를 골라서 큐티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김양재 목사에게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하나 있다. 운동. 어쩌면 그녀에게는 큐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큐티선교회 사역과 우리들교회 목회를 둘 다 해내려니 요즘 쉰 셋의 나이에도 밤을 지샐 때가 많다는데.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나면 꼭 운동을 해야지요. 산에도 가고 더 많이 걷고 그래야 하는데 잘 안되네요. 운동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긴 한데 말예요. 요즘엔 체력이 곧 ‘영력’이라죠? 호호”
글 이숙희 기자|사진 이상윤|큐티선교회 www.qtm.or.kr
< 출처 : 월간 레베카 2003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