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 말씀으로 여는 ‘변화된 하루’
고단한 결혼생활서 희망준 말씀 읽기와 묵상…22년째 계속 큐티선교회 조직,
매년 300여명 결신자 생기는 대회 꾸리기도
5월의 이른 아침, 서늘한 공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어제 내린 비로 말끔하게 씻겨져내린 공기 속에는 풋풋한 나무내음이 배어 있다. 봄 날의 아침은 다른 계절과 달리 고요함이 깃들어 있고, 아침 햇살은 눈부시다. 마음을 단정히 가다듬고 앉아 성경책을 펼친다. 오늘 묵상할 말씀은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의 의미를 친숙한 노트에 적어나간다.
그렇게 말씀으로 시작되는 하루, 그것이 김양재 회장(52·큐티선교회)의 삶이다. 벌써 22년째 변함없이 계속돼온 말씀 읽기와 묵상, 그런 그에게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란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이런 별명은 어쩌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에게 큐티란 단순히 ‘날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고단한 삶의 끝에서
김 회장이 말씀 읽기와 묵상을 시작한 것은 고단한 시집생활이 계속되던 30대의 어느 하루였다.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아는 것이라곤 공부와 피아노 밖에 없었던 그의 삶은 결혼과 함께 180도로 변화한다. 음대 교수가 되고 싶었던 김 회장은 유복한 집안환경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편이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계산’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시집에서의 삶은 끝없는 청소의 연속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시작된 청소는 하루종일 마른걸레, 물걸레, 기름걸레를 들고 온 집안을 샅샅이닦고 또 닦는 가혹한 노역으로 이어졌다. 엄격한 시어머니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걸레가 지나치게 물기가 많거나 말라 있으면 걸레를 바닥에 집어던지며 혹독하게 며느리를 몰아세웠다.
늘 남에게 교양있는 여자로 비쳐지길 원했던 내면의 욕망 때문에 김 회장은 그런 삶을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고 살아냈다. 공부와 피아노로 이어지던 삶은 걸레와 청소, 집안일로 대체되었고, 그렇게 무너져가는 자신이 끔찍하면서도 교양이란 허울에 매달려 있었던 김 회장은 모든 갈등을 내면으로만 집어 삼켰다. 하지만 그런 삶이 오래 계속될 수는 없었다.
결국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졌던 한 번의 외출이 빌미가 되어 김 회장은 집을 나오게 되었고, 기도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다. 4대째 믿는 집안의 막내 딸이었고, 어머니는 집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교회 화장실 청소를 할만큼 신실한 분이었다. 자신도 10여년을 교회 반주자로 봉사했지만 실제로 김 회장은 30세가 되도록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기도원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김 회장은 결혼생활에서의 문제가 ‘사랑’이 없었던 자신에게 있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981년 <매일성경>이란 큐티 교재를 알게 되면서 말씀 읽기와 묵상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의사로서 왕성한 삶을 살던 남편은 갑작스럽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전도자의 삶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김 회장은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교회 구역예배에서 큐티 모임을 시작한 것이 이어져 그의 삶을 또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결혼과 함께 방향을 틀었던 그의 삶은 결혼 생활 13년 만에 남편과의 사별로 또한번 크게 방향을 틀었다. 그 이후 13년은 전도인의 삶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로 이끌어간 것이 아니었다.
“어떤 커다란 계시를 받고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제가 한 일은 날마다 큐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절 한절 읽고 묵상하며 순종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김 회장의 큐티 모임은 2000년 큐티선교회로 정식 출범하게 된다. 옥한흠(사랑의교회),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김진홍(두레교회), 이동원(지구촌교회), 이철(남서울교회), 이태웅(GMTC이사장), 정주채(향상교회), 정근두(울산교회), 박은조(샘물교회), 방선기(직장사역연구소), 김서택 목사(대구동부교회), 그리고 김인수(고려대교수), 박성수 장로(이랜드대표)가 선교회 이사를 맡아주었다.
초기 몇 백명이 모이던 선교회는 다음해 큐티선교대회를 통해 2000여명이 모이는 집회가 되었고, 매년 300여명의 결신자가 생겨났다. 모임이 계속 커지고 주위의 요구가 계속됨에 따라 김 회장은 서울 대치동 휘문고 안에 우리들교회까지 세우게 되었다.
큐티하는 삶
‘날마다 큐티하던 여자’는 이제 큐티를 통해 또다른 삶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것은 큐티를 통해 한국 교회에 새로운 영적 삶을 일으키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운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실지 알 수 없지만, 김 회장은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는 “날마다 큐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절 한절 읽고 묵상하며 순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지홍 차장 등록일 200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