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말씀 묵상과 말씀에 대한 사랑이 우리들교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설교에 굳이 이름 붙인다면 ‘큐티 설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큐티 설교라는 이름도 맞는 것 같은데, 저는 일주일 동안 큐티한 내용으로 설교를 합니다. 처음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어떻게 설교해야 할지 굉장히 고심했습니다. 초신자들에게 어렵지 않도록 설교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강해 설교와 주제 설교를 합친 큐티식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Q 주일 설교를 준비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됩니까?
저는 일주일 내내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큐티한 내용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저의 큐티 노트가 가장 큰 주석입니다. 또 성경을 읽고, 책을 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그 다음에 끊임없이 적용 거리와 상황을 생각하는데, 신문이나 영화를 보면서 많이 생각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적용 거리를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그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책 한 권을 읽어도 쓸 게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잇습니다. 이것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계속되는 싸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들교회는 목장 나눔에서 보고서를 올리는데 그것을 읽으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심방하게 되고요. 본인들이 올려놓은 나눔들을 보는 것도 굉장한 유익이 있습니다.
수요 예배 설교는 3시간쯤 하니까, 월요일에 본문을 정해 그 본문을 모두 한 번 묵상해 봅니다. 화요일, 수요일에는 수요 설교를 정리하면서 보고, 다시 목요일이 도면 주일 설교에 집중해 책도 봅니다. 특별한 미팅이 없을 때는 계속해 본문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져 설교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설교하게 됩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성도들이 가끔 전화를 합니다. “오늘 완전히 이혼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에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많이 기도하게 되고 ‘오늘 말씀으로 꼭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간구하게 됩니다.
Q 우리들교회를 가리켜 상하고 아프며 억눌린 자들의 교회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성도의 아픈 이야기들이 목사님의 설교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항상 설교할 때마다 무엇보다 죄인된 입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회개할 때 성도들도 많이 회개하는 것 같습니다. 욥이 자신은 구더기만도 못하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조금 이해되거든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든다”라는 히브리서 1장 3절처럼 정말 말씀을 붙들고 있을 때 힘들었던 남편의 마음도 붙잡게 되고 성도들의 마음도 붙잡게 됩니다. 말씀으로 붙든다는 것은 말씀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말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날마다 자기 죄를 보고 정말 하나님은 100% 옳으시고, 우리는 100%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믿음에는 ‘왜’라는 게 없더라고요. 하나님의 IQ가 얼마나 높으시겠어요. 그분께서 정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자녀 교육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문제아가 있는 게 아니라 문제 부모만 있더라고요. 저는 힘들게 사는데 하나님께서 항상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시원케 하시며, 그 다음에 안식을 얻게 하시는 것이 놀라운 비밀이더라고요.
Q 큐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의 능력이나 학벌에 상관없이 큐티는 어렵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저도 개역 석영으로 큐티를 하는데 진짜 오늘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제가 설명하는 게 쉽다고 느껴질 때까지 성경을 10번도 더 봅니다.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설교할 수 없고, 설득돼야 설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앞뒤로 계속 읽는 훈련을 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장에서 28장까지를 그렇게 읽다보니 어느 순간에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거예요. 그것만 갖고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으로 듣게 됩니다. 그러면 어제 오늘 읽은 본문이 연결되면서 성경을 읽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아모스에 보면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성경책도 너무 많은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아합과 이세벨을 볼 때 아합이 모든 것을 갖고도 정원을 갖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부인이 ‘왜 걱정하고 있느냐?’면서 ‘그러면 나봇을 죽여 버리지 그러느냐?’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나봇은 땅 조금 가진 것을 그냥 왕에게 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땅을 팔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키는 바람에 결국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Q 사실 큐티는 본문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것과 더불어 성경 66권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신약은 구약으로 설명되고 구약은 신약으로 설명되는데, 저는 관주를 많이 이용했어요. 시간이 없을 땐 5분을 읽기도 하고, 시간이 있을 땐 2~3시간을 묵상하면서 관주를 모두 찾아봤어요. 사도해언과 가은 경우에 지도까지 찾습니다.
공부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그 발자취를 따라 가보고 싶어서 찾았어요. 누굴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경의 내용을 좇아가 보고 싶어서 공부했지요.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본문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으면 일단 ‘내 탓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본문 해석에 대해 반드시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성경 66권이 있지만 결국 하나를 제대로 끝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자세히, 성령님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고 그날 본문에 나오는 토시 하나까지 묵상하면 귀한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왜 1장 다음에 2장이 왔는가를 계속 생각하고, 왜 이 구절 다음에 저 구절이 왔는지를 깊이 생각한다면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으로 성경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에스겔 2장 10절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고 말씀하시는데, 말씀이 달게 되려면 “씹어 먹으라”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큐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한 성경에 저주의 말씀도 있는데 말씀을 씹어 먹게 되니까 달기가 그지없습니다. 말씀을 차례대로 구속사적으로 읽어가면서 씹어 먹는 훈련을 하니까 상담, 양육, 전도, 봉사 등이 자유자재로 되더라고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든다”라는 게 무엇인지 정말 발견할 수 있습니다.
Q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성경의 주제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 목사님은 어떻게 표현하세요?
저는 성경의 주제를 ‘거룩’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목적도, 결혼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목표도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사람들은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애굽의 종 되었던 땅에서 너를 구원하려 하는데, 나는 너를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정말 행복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을 위해 산다고 저는 믿습니다. 구별되게 산다면 행복은 부산물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그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안 됩니다. 따라서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대로 불신자와 결혼한 후 마음에 안 든다고 갈라서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미 결혼했으면 ‘내가 너무 거룩하지 못하니까 남편을 붙여서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남편에 대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수고하는 공로자로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저의 이야기거든요. 제가 교회에 다녔지만 정말 거듭나지 못했고, 거듭나지 못한 신랑을 만나서 어려운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회개하고 기도하다 보니 남편이 저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정말 수고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아니라 거룩이었습니다.
그 은혜는 인생의 행복과 비교할 수 없더라고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말씀 속에서 제게 보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그 기쁨은 어떤 괴로움도 참아내게 합니다. 말씀이 깨달아지고 저의 죄가 보이는데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발견하게 되니까 뛸 것 같은 기쁨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붙든다는 것을 정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Q 여성 목회자로서 사역하면서 느끼는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여성 목회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여성 목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도 여성 목회자가 그리 많지 않았거든요. 미리암, 홀다, 드보라 등 특수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쓰셨어요. 일반적으로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집안 살림, 목회활동 등 1인 몇 역을 해야 하는 줄 몰라서 그 부분이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은 길을 가는데 ‘여자로서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을 해주는 여성 목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기 상황에 순종하라는 모델로 저를 사용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목사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Q 목사님의 설교에서 특징을 들자면 적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적용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요?
제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25년 동안 큐티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주요한 적용은 본문에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말씀을 읽으면서 당시 상황을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왜 사마리아로 가셨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부분을 갖고 오랫동안 묵상하면서 그 본문의 상황이 납득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놔두고 사마리아로 가셔서 수가성의 여인을 만났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주님의 말씀이 숨결을 불어넣어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바리새인들과 더 이상 만나지 않으시고 낮은 사람들을 만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그 다음에 깨달음이 와서 적용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남편에게도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나서 그 상황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눔이란 것은 몇 번 돌아가다 보면 사람의 문제가 거의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번 바람을 피우면 매일 바람을 피우지 않습니까? 그것을 날마다 들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이 있어야 하기에, 그런 것을 자를 수도 있는 지혜도 가져야 합니다. 결론은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