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분들께,
저희는 지금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습니다. 오늘(12월 17일) 오후 1시 30분에 알바니아 티라나를 떠나 이탈리아 밀라노를 경유해 지금 막 터키 이스탄불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이제 10시간 후인 내일 저녁 무렵이면 한국 인천 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막내 형범이는 하루 종일 신나게 지내다가 피곤했는지 밀라노를 떠날 때부터 계속 자고 있고, 형석이, 형민이는 잘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비행기 좌석마다 설치된 모니터를 보며 신기해합니다.
몇 달 전부터 “이제 몇 밤만 자면 한국 가지?” 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태어난지 52일만에 한국을 떠난 형범이는 한국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비행기 타고 할머니집에 간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4년 만에 비행기를 타보는 형석이도 그동안 다른 친구들은 한국에 가는데 왜 자기는 못가냐고 속상해 할 때가 많았는데, 드디어 소원대로 열 번째 생일을 한국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형민이는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자기와 헤어지게 되어 많이 울었다는 얘기와 함께 선물로 건네받은 반지 목걸이를 목에 소중히 걸고 있습니다.
알바니아 공항에 환송 나온 선교사님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도 저희가 이제 안식년으로 한국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는데,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뭔가 코끝이 찡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을 강하게 붙들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가 다시 다른 곳에 옮겨심기는 것 같기도 하고, 복무 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군인 같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저희 주변을 늘 감싸고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들이 마음에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먼저는 눈물을 흘리며 배웅해준 동료 선교사님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지내는 시간동안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좋은 동료 선교사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구 300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에 한국인은 대부분 선교사들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보다 서로 더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언어를 배우고 함께 사역에 대한 꿈과 고민들을 나누었던 분들로 인해 참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또 저희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저희 가족 모두에게 따뜻한 목도리와 모자를 선물한 쉬프레사 교회의 한 자매의 얼굴도 스치고 지나갑니다.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며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겨온 자매인데, 과부의 두 랩돈과 같은 돈으로 저희를 위해 귀한 것을 선물한 자매로 인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알바니아 교회를 섬기겠다고 이곳에 왔지만, 사실 돌아보니 오히려 저희가 이들의 섬김과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음을 깨닫습니다.
팔커 이웃 사람들의 얼굴도 마음에 스칩니다. 10개월 남짓 그곳에 살면서 처음엔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종교배경이 다른 것으로 인해 마음이 어려워 질 때도 있었지만 저희 가정을 자신들의 이웃이자 친구로 기꺼이 받아준 사람들을 떠올릴 때 감사하게 됩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저희 집으로 찾아와 손으로 직접 뜬 양말, 집에서 담근 음식 등을 선물하며 인사 오는 분들로 인해 마음이 크게 격려가 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팔커를 방문하던 첫날부터 저희를 환영하고 계속해서 그곳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던 마을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어느새 청년 티가 나는 아이들... 여전히 껄렁대며 할 일없이 마을을 몰려다니는 이 아이들을 생각할 때 알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저희가 팔커를 떠나기 전에 뭔가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미국에서 온 단기 팀과 축구 캠프도 가졌었는데, 여전히 이 아이들에게 뭔가 해 주고 싶은 아쉬운 마음이 남았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이지만, 저희들마저 팔커를 떠나는 것이 이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지 않을까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찍어 둔 사진으로 한 아이, 한 아이의 사진을 담아 2013년 달력을 만들어 떠나기 전날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는 달력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엔 고맙다는 말을 절대로 안하는 아이들인데, 그렇게 정중히 여러 번씩이나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1년 후엔 꼭 다시 돌아올 거라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던 그날의 장면이 제 맘을 스칩니다. 저희가 잠시 그들을 떠나있는 동안에도 주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시고, 이들의 마음을 지켜주시길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
조금 전, 이스탄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한국인 승객들을 보고 형민이가 “저 사람 한국말 해요” 하고 신기해하더군요. 자꾸 제 옆구리를 찌르며 가서 말을 걸어보라고 하길래, 순간 ‘아, 이제는 나도 한국말을 하는 한국 사람들 속에 다시 들어가게 되는 구나...’ 하고 새삼 느껴졌습니다. 어느새 알바니아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다시 한국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왠지 생소하고 어색함을 발견합니다. 선교지에 나왔을 때 한동안 그곳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다시 한국에 들어가도 재적응의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선배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한국도 많이 바뀌었지만, 나 자신도 바뀌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말을 통해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선교사로 선교지에 나와 보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많은 일들... 이전에 막연히 듣고 생각해 오던 선교사의 삶과 사역이 실제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피부로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서 저희를 단련하시고 순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동안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귀한 것으로 섬겨주신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저희를 기억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여러분으로 인해 지금까지 저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지내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한국에 가게 되면 기회가 되는 대로 만나 뵙고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이제 비행기에서 내리면 오랫동안 저희들을 기도하며 기다려주신 부모님이 공항에 마중나와 계시겠지요. 몰라보게 자란 손주들을 보시고 기쁨으로 탄성을 지르시며 달려와 안아주시겠지요. 이 후에 우리가 주님 나라에 갈 때도 주님이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다가 달려와 안아주시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아들아, 수고했다.” 하시겠지요. 그리고 기쁨의 잔치를 벌이겠지요. 돌아 올 집이 있고, 맞아 주시는 가족이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2012. 12. 17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무가족(이동윤/정인혜/형석/형민/형범) 드림
* 기도 제목
1. 안식년 동안 깊은 영적 충전과 회복이 있도록
-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고 새로워지도록
- 지난 시간들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다시 준비될 수 있도록
2. 온 가족이 건강하게 한국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 필요한 쉼을 잘 누릴 수 있도록
- 양가 부모님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 아이들이 한국 학교생활을 잘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좋은 친구와 선생님을 만나도록)
3. 사역보고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4. 동역자님들과 좋은 만남과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5. 본국 사역 기간 동안 감당해야 할 일들에 대해 지혜와 인도함을 주시도록
6. 저희 가정이 떠나 있는 동안 팔커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시고, 알바니아 무슬림들을 위한 많은
중보자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