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김양재 목사님, 그리고 우리들 교회 성도님,
안녕하세요, 이모세 선교사 후원회 총무 이영입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
이 모세 선교사의 그 간 중국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이 곳에 올리라 하시어서,
이렇게 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이모세 선교사님은 2002년 4월에 중국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간의 선교는 세 가지로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조선족 처소교회 사역, 조선족 교회 지도자 집회 사역, 한족 신학교
조선족 처소 교회들을 돌아보며, 예배와 말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사모님께서 돌아 보시고, 간간이 있는 집회는 선교사님이 인도하였습니다.
이 중 하나님 나라에 꿈을 두고 있는 두 자매가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섬기는 교회의 부흥을 소망하는 한 자매는 6개월간 교회 말씀과 워십 등을 배워 갔으며,
사역자를 소원하는 또 한 자매는 백석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조선족 지도자 사역.
처소 교회들은 대부분 가정 교회의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이고, 그 지도자들의 지도자가 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 천 혹은 수 만 명의 지도자가 되는 것인데,
이 분들의 집회가 1년에 여덟 번 정도 있었습니다.
무척 위험한 집회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아슬아슬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 집회의 인도를 5년 정도, 작년까지 하였습니다.
한족 신학교.
한족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국 북쪽 지역에서 시작하여
위험을 피해 여러 번 옮기면서 계속 되었었고,
드디어는 큰 도시 변두리에서 자리잡아 몇 해동안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년에 공안들에게 기습을 받아서
고향이 다른 곳인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다행이 선교사님은 잠깐 빵 사러 간 틈이어서,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에 신학교 터를 잡아 20명 정도의 신학생을 두고 있고,
또 한 곳에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곳은 생긴지 얼마 안되었고,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두 곳은 아주 시골이어서, 전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합니다.
이 전 졸업생들은 파송되어, 중국 내륙에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장갑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 회사의 후원으로 기계를 세 대 들여 놓고, 신학생들이 장갑을 만들고 있습니다.
워낙 작아서 수익금이 나는 것은 아니고,
이제 파송되어 나갈 학생들의 직업 훈련과, 작은 일거리로,
장갑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제 졸업생들을 더 큰 세계로 파송하고자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내륙으로 가는 이도 물론 있고, 중국 선교 사역 또한 계속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아프리카 혹은 중동,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어떤 곳으로
그들을 파송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 8년 넘는 기간의 사역을 모두 전해드리기엔,
제가 너무 부족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부족하고 짧은 이야기, 성도님들의 영으로 행간과 표현하지 못한 것들까지
모두 보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지역적인 위험으로 구체적인 지명과 더 자세하게 말씀 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임마누엘.
우리들 교회에, 그 예배에,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