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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05] 김양재 목사 – 우상을 가루로(열왕기하 23:4-14)
■ 본문 : 열왕기하 23장 4~14절
■ 제목 : 우상을 가루로
■ 설교 : 김양재 담임목사님
4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6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9 산당들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더라
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어떤 사람도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자기의 자녀를 불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11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12 유다 여러 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제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것들의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리고
13 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14 왕이 또 석상들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 곳에 채웠더라
우상을 가루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오늘 본문을 통해 우상을 가루로 만드는 세 가지 길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꺼내 불사릅니다.
요시야는 말씀을 듣고 언약을 세운 후 가장 먼저 성전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는 성전 안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우상과 그릇들을 밖으로 꺼내 기드론에서 불사르고 가루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성전 안에 우상이 함께 있었지만, 말씀으로 회개한 사람은 남을 먼저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우상을 먼저 끌어냅니다. 우상은 감추어 두면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하나님 앞과 공동체 앞에 정직하게 드러낼 때 성령의 불로 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돈과 성공, 자녀와 인정, 체면과 욕심이 성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마음의 성전을 청소하는 종교개혁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꺼내 불사른다는 것은 죄를 숨기지 않고 말씀 앞에 내어놓아 다시는 붙잡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며, 우리 힘이 아니라 성령의 불이 임하여 탐욕과 교만과 미움, 두려움과 중독까지 모두 태워 주시기를 간구하는 삶입니다.
[적용 질문]
● 너무 가지고 싶어 달아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 아직 꺼내 오픈하지 못하는 내 안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 이번 주 목장에서 오픈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길 간구하겠습니까?
● 구원의 역할은 좋은 역할 나쁜 역할이 없습니다. 지금 무슨 역할입니까?
2. 더럽게 합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성전 안의 우상을 꺼내 불사르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다 전역의 산당을 찾아 더럽게 하여 다시는 우상숭배의 장소로 사용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방식과 편리함대로 드리던 예배의 자리였고, 하나님보다 높아진 인간의 욕심과 교만을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산당을 헐고, 도벳을 더럽혀 다시는 자녀를 몰록에게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우상을 섬기던 제사장들은 더 이상 제단에 오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죄와 적당히 타협하거나 잠시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끊어 내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붙들고 있는 산당이 있습니다. 성공과 체면, 인정과 자녀, 편안함과 자기 의가 하나님보다 앞설 때 그것이 바로 내 삶의 산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보다 거룩을 원하시기에, 내가 높여 놓은 자리를 스스로 더럽다고 인정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만 높아지십니다. 내가 티끌과 재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고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는 내 안의 산당을 허무시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적용 질문]
● 나에게 "이것만은 건드리면 안 된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제단에 자녀를 제물로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 삶의 어느 자리가 내 산당입니까? 어떻게 더럽혀 멀리하겠습니까?
3. 빻아 내립니다.
요시야는 우상을 부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성전 입구에 세워져 있던 태양을 위한 말과 수레를 없애고, 여러 왕들이 세운 제단과 심지어 솔로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산당까지 철저히 헐어 가루를 만들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 버렸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우상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집안과 공동체 안에 뿌리내린 우상까지 끊어 내는 참된 회개를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가치관과 기질, "원래 우리 집은 이렇다"며 정당화하는 오래된 습관과 상처를 붙들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뿌리 깊은 우상은 우리의 결심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가루로 만드시지만,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꺾지 않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상하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오래된 우상의 뿌리까지 뽑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우상을 가루처럼 흩으시고, 그 자리에 참된 예배와 순종의 삶을 세워 가십니다.
●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차마 못 건드리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 "원래 우리 집안이 이래"하며 정당화하는 뿌리는 무엇입니까?
● 부수고 있는 상한 사람은 누구이고 지키고 있는 오래된 우상은 무엇이에요?
● 내 힘으로 안 된다고 원망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무릎 꿇겠습니까?
[나눔]
인생 자체가 우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로 보려던 것도 아닌데, 유튜브에서 운명, 점 등을 보게되기도 했다. 저절로 우상을 따라가는 내 모습을 보며 많은 회개가 되었습니다.
B집사님: 어렸을 때부터 건물주로서 월세를 받고 사는 삶을 꿈꿔왔습니다. 많은 아이를 키워야하기에 안정적인 삶을 원했습니다.
A집사님: 지금에야 애들한테 결혼 생활에 보탬이 됐으면 해서 주식에 손 댔습니다. 요즘 애들이 안정적인 시작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C집사님- 돈입니다. (카페는 내려놓으셨어요?) 돈을 벌려고라기 보다는, 아내가 활력있는 삶을 살았으면 해서 원했습니다. 저는 계속 궁금함이 있어서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엄청난 호기심이 있고,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축구도 보는 것보다 하는 게 재밌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해야하는 성격입니다. 아내와는 반대.
D집사님- 특별히 없어요. 바라는 것은, 딸이 대학 좋은 데 가는 것 정도? 제가 작년에 목자님을 보고 한가지 느낀점이 있습니다. 딸 라이딩을 해주다가, 공부도 안하고 그런 모습 보면 짜증나고 생색날텐데, 이왕해야하니까 좋은 마음으로 한다는 목자님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뿌듯하겠다라는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잔소리가 좀 줄었던 것 같습니다.
D집사님의 아내: 어제 나눔할 때, 국연이가 서현고를 갔는데 학구열이 높은 학교라 다른 학교였으면 20등 안에 들어올 성적인데 여기서는 60-70등입니다. 내신이 밀리는 것 같으니, 학교를 잘못 온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하는 사이에서 광야의 시간을 보내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요일 저녁에 고2 입시설명회를 참석했다. 가보니 내신이 너무 중요하더라.
어제는 학교를 다녀왔는데, 눈을 실명할뻔 했다는 국연이의 말에 놀랐습니다. 드론 날리는 실습을 하는데, 조작미숙으로 눈을 탁 치고 갔답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눈알을 다칠 뻔 했습니다. 나는 내신 걱정할 때, 국연이는 실명할 뻔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보심에 너무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루 하루 매 순간 평범한 하루가 감사하다는 기도가 나옵니다.
C집사님의 아내: 목장 할 때마다 제가 질립니다. 같은 그릇에 두면 스스로 질려서 계속 새로운 걸 찾게 됩니다. 예전부터 그릇을 좋아해서 러시아서부터 사댔는데, 대장동 되면서 다 처분을 했습니다. 한번 가루로 만든 시간을 가졌었는데, 우리들교회로 오니 목장에 오다보니 그릇이 필요해졌습니다. 아 그때 왜 버렸나하면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릇도, 소형 가전도 새로 나오면 너무 궁금합니다. (호기심이 같네요!)
A집사님의 아내: 요즘에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자잘한 걸 계속 사들입니다. 내가 원했는데도, 남편이 점점 늦게 들어오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외롭다는 말을 했음에도 공감보다는 나도 힘들어!하면서 극을 달리니까 저는 힘들었습니다.
B집사님 아내: 갖고 싶은 게 많습니다. 광안리 가보니, 여기에 오피스텔 하나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자동으로 하더라고요. 남편 옆에서 저도 어깨너머로 배운 것 같습니다. 또 누구 귀여운 강아지 있으면, 나도 갖고싶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번 TT가서 간증하려니, 아직 막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려니까 고민 됐습니다. 정유라 마을께서는, 청소년부에 물어보라고 해서, 여기가서 저기가서 물어보느라 간증 한 번하기 어렵다 했습니다. 아 간증 하기 싫다는 데까지 갔습니다. 얼마나 내가 편하고, 불편한 걸 싫어하는 사람인지, 구구절절 말해야하는 처지가 싫었습니다. 청소년부에서 나온 말은, 오픈해라. 오픈은 빨리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이삭이에게 오픈하고, 간증을 해도 되는지 이삭이에게 허락을 받고 하라는 답이었습니다. 너무 하나하나 과정이 너무 싫었습니다. 이삭이에게 말은 해야되는 상황인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
E집사님의 아내: 저도 불사르기위해 꺼내놓아야 할 제 모습은, 외갓집과 친가의 모습입니다. 외갓집은, 교회를 오래 다니고 성실 근면, 재산을 일궈놓으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유산까지 남기신 모습. 그러나 친가는 아들 이름으로 빚까지 만들고 간 모습이 대비가 컸습니다. 좋은 어른의 모습은 외갓집 식구들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속사 관점은 나를 예수믿게 해준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라고 했는데, 제 외갓집과 친가를 비교하는 모습은 언제나 뿌리 깊었습니다. 사실 친할머니는 재혼을 하셨기에, 친할머니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보니 저희 집 식구들도 그다지 반기지 않았습니다. 유대관계가 안 쌓여 있었는데, 작년 추석에, 제 생일이 가까운 걸 아시고 밥 먹고 따로 봉투를 스윽 주셨습니다. 알고보니, 생일선물로 편지와 용돈을 넣어두셨습니다.
너무 이 일에 놀랐습니다. 할머니께 편지를 받을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교회를 다녀서 구속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내 가치관이 부끄러웠습니다.
또 저희 고모는, 지적/신체적 장애가 있습니다. 작년에 아버지와 급하게 고모를 만나뵈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50대 후반이신 고모에게 시간이 많이 없다는 걸 생각해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이번에 가서 영접기도를 준비해서 갔습니다. 밥 같이 먹고 병원에 들여보내기 전에, 아빠 앞에서 기도해도 될까? 허락을 얻고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근데 놀란 것은, 고모가 너무 크게 아멘! 했던 것입니다. 그걸 보던 아빠도 놀랬습니다. 저는 이 틈을 타서, 아빠도 아멘을 해줘야한다! 했습니다. 그날 아빠가 저한테, 너가 같이 와서 다행이다. 하는 것입니다. 믿지는 않지만, 고모를 위해 같이 기도하고, 고모의 아멘 소리는 아빠한테도 위로가 됐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