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도 진실하냐]
왕하 10:12~19
어떤 나눔을 보니까, 아내가 '꽃도 예쁘다 하면 예뻐진대요.' 했더니, 남편이 영혼 없이 '당신도 예쁘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남편에게 선물 받은 이야기를 전하면, '내가 선물이야.'하고 넘어가는데, 아들이 아빠에게 꽃다발을 엄마에게 무릎 꿇고 전해주라고 해서 감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막상 선물로 현금을 받으면 제가 어디에 쓰겠냐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 가장 진실합니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후가 여호나답을 만나자마자 '네 마음도 진실하냐?' 묻는데, 이 질문에 '진실합니다'로 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사로잡힌 것을 봐야 합니다.
이스르엘에서 아합 집에 속한 왕자 70명과 모든 사람을 처형한 예후는 수도 사마리아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에 목자가 양털 깎는 집이라는 휴게소에서 아하시야의 조카들을 만납니다. '너희는 누구냐?'고 묻는 예후에게 자신들이 이세벨 집안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북쪽의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간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후는 그들을 사로잡아 목자를 통해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42명을 다 죽였습니다. 육이 사로잡히는 사건을 당하면 내가 사로잡혀 있는 죄악은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육적인 DNA는 다윗 집사람임에도 영적으로는 아합 집사람으로 자라며 말씀을 무시하는 아합의 집 구조 안에 있으니까 사로잡히는 것이 무엇인지 회개가 뭔지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을 보게 하시려고 육에 묶이고 사로잡히고 구덩이에 빠지게 하십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굽은 길에서 바른길로 돌이키고, 거짓을 떠나 진실하게 하시려고 딱 맞는 환경을 주십니다. 말씀을 듣고 내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악에 사로잡힌 존재라는 걸 알 때 가장 진실하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둘째, 사람만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 예후가 우연히 만난 사람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입니다. 레갑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후손이 모세 따라나섰다가 영적으로 최고의 가문에 들어가게 된 갈렙 자손입니다. 믿음은 선택이고,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택자를 알아보신다고 성경에서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15절에 예후가 여호나답에게 진실하냐고 물었던 질문의 순서가 원문에서는 네 마음도 진실하냐?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해 진실한 것처럼 말이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영적인 여호나답에게 깊이 생각하게 하고, 그를 새롭게 일깨워주었는데, 죄악에 맞서는 영적 전쟁에 마음으로만 함께 하고 몸은 함께하지 않으며 진실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후손들에게 나그네 인생처럼 집 짓고 살지 말고 농사짓지 말고 유목민으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포도주도 먹지 말고 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여호나답과 예후의 차이가 뭘까요? 여호나답은 '네 마음이 진실하냐?'는 질문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생각했지만, 예후는 이기고 또 이기고 있기 때문에 그 시선이 사람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속이고 속는 것이 인간의 특기이기에 사람에게 진실해 보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진실해 보이는 데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은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에 '내가 틀렸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는 내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우리들교회 성도라면 무조건 사과해야 합니다. 다들 억울해서 치를 떠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생각하면, 내가 틀렸다는 것은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마음이다윗의 길을 따르는 마음,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마음이고, 이게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인 줄 믿습니다.
셋째, 내 계책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예후는 사마리아에 사는 모든 백성을 불러서 자기가 아합보다 바알을 더욱 많이 섬기겠다고 선언하고, 바알 숭배자들을 불러내어 그들을 모두 멸하고자 하는 계책을 씁니다. 계책은 히브리어로 속임수,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진 것을 말합니다. 반면 진실은 바르다, 굽어있지 않고 똑바르다.는 뜻으로 계책과 정반대인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은 계책, 구부러진 방법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후는 바알교를 척결하면서 한 번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묻지도 않는 엄청난 열심은 내가 잘되고 내가 높아지기 위한 열심으로 그 끝은 바로 속임수입니다. 그러면여호나답은 왜 그 계책에 가만히 동조했을까요? 바알교를 척결한다는 목적이 너무 좋기 때문에 수단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마음도 진실하냐?' 이 질문에 회개해야 할 때가 아직 차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내 계책에 의존하지 말고 사소한 일도 하나님께 물으며 성경을 펴야 합니다. 공동체에서 묻고 지체들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이런 형식이 우리 마음에 진정성, 진실성을 세워주고 지켜줍니다.
목자님과 딸의 관계 회복을 바라는 어느 목장 나눔입니다. 한 목원이 몇 주 전부터 목자님이 따님에게 사과하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목사님께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예수님이 죄 없는데도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잖아요!라고 답장이 왔고, 목자님을 공감하며 딸과 관계 회복을 위해 사과하셨으면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목자님은 아빠가 이야기하는데 인상부터 쓰는 딸에게 훈육 차원에서 무엇이 옳은지 갈등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엘리후같은 부목자님이 한마디 하시며 따님이 고3이기 때문에 지금은 딸을 품어주는 훈육이 필요한 때라는 의견을 내셨고, 목자님은 목장 처방에 따르도록 하셨답니다.
여러분,네 마음도 진실하냐.는 내가 사로잡힌 것을 보고 주님께로 돌이켜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것은 한마디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자꾸 '그게 아니고'라고 한다면 진실과 아직 멀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 계책을 의존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스스로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 수 없지만 내가 틀렸다는 걸 알고 회개하여 진실한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