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가 이르거든]
왕하 10:1~11
저의 학창 시절에는 펜팔이 유행이었는데, 아메리칸드림이었던 시기였기에 미국의 청소년들과 펜팔을 하면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고 해서 많이들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아이돌 같은 사람과 펜팔을 했다면 제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후가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스승들에게 간담이 서늘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이런 편지가 이르거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두려워하며 생각해야 합니다.
이세벨과 아합의 집이 모두 심판을 받았음에도 아합 가문이 어찌나 질긴지 70명의 자녀가 강력한 요새 수도 사마리아에 남아있습니다. 수도 사마리아는 예후가 직접 공격해서 점령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기에, 정통성과 명분을 얻기 위해 군대 대신에 이스르엘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들은 편지를 받고 10여 년 전 나봇을 죽이라고 보낸 편지를 통하여 악에 동조했던 것이 생각나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편지 내용은 사마리아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 이스르엘 귀족들의 금수저 아들 중에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왕으로 세우고 예후 자신과 맞서 싸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열패밀리의 왕자 중에 어질고 정직한 자가 한 명도 없어 예후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며 자기의 생사를 이세벨에게서 금세 예후에게 맡깁니다. 사실 나봇을 죽이라는 것이 더욱 무서운 명령인데 두려워하지 않았고, 역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오히려 예후를 두려워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두려운 것이 없고, 두려워하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강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춰진 내 악을 봐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해야 생각도 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10:28)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늘 이 세상에서 심히 두려워 떱니다. 하지만 예후의 편지처럼 나를 두렵게 하는 소식이 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멈춰 세우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편지가 있거든 원망하지 마시고 말씀으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회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지도자들의 항복 편지를 받은 예후는 두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그 내용은 내 편이 되어 왕족을 다 죽여 아합 아들들의 머리를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때 편지를 받은 장로와 지도자들은 과거의 죄악을 기억하고 회개했어야 하는데, 나봇을 죽일 때와 똑같이 잘못을 반복합니다. 그들은 예후 편에 서서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일을 하지만, 이는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가 누리는 것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러니 속으로 생색이 나서 그 생색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쏟아냅니다. 그래서 나봇을 죽이고 그 잔인함으로 아합의 자손들을 다 죽이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 없는 인생의 결말이며,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을 보고 반성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들을 미워하는 데에서 벗어나는 길은 회개뿐입니다. 미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시는 편지이며,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내 자신의 미운 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이루어집니다.
이스르엘 귀족들은 아합 자손의 머리를 가지고 와서 그 머리를 이스르엘 성 앞에 무더기로 쌓아 두었습니다. 성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이 보고 예후에게 절대복종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예후는 '이 끔찍한 짓을 버린 사람이 누구냐?'고 천연덕스럽게 묻습니다. 귀족들은 시키는 대로 자기 주인을 배신하고 그 집 자손을 다 죽인 증거까지 가져왔는데, 갑자기 범인 취급합니다. 정말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10-11절에 예후는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심판을 예고하는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말씀을 믿고 가는 것이 얼마나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타적으로 살고자 하면 두려운 것이 없지만 늘 이기적으로 살고자 하니까 두려운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이스르엘 귀족에게 불현듯 이른 예후의 편지는 그들이 회개할 마지막 기회였지만,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기에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세속사는 악한 역사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구속사를 써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미리 들어두어야 합니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이며, 큐티는 예방주사를 맞는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아들로 인한 두려운 사건 때문에 말씀이 들리게 되었다는 한 부목자님의 고백입니다. 아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각종 사건을 저지르다가 구치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초반에는 마음이 아파 괴로워하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탄식했지만, 지금 내 환경과 처지에는 아들을 빼낼 방법도 없고 이번 일로 인해 아들이 지난날 자신을 되돌아보며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라는 목장 처방에 설득되었습니다. 아들이 좁은 문을 지나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가정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가겠습니다. 여러분, 아들을 그곳에 방치하고 싶은 부모는 없을 텐데, 믿는 우리는 구원의 관점으로 이런 사건도 필요한 부분이라 여기며 가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지 못한 무서운 편지가 배달될 때, 두려워하며 생각하여 회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교에서부터 비롯된 두려움인 것을 알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통해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도착한 편지를 나누고 미리 말해주고 보여주고 해석해 주는 목장에 꼭 붙어가시며 양육도 받기를 바랍니다. 편지가 배달될 때 말씀으로 잘 해석하셔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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