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왕하 9:11~22
호주의 국제관계 싱크탱크 기구인 경제 평화 연구소(IEP)에서는 매년 세계평화지수를 발표하는데, 2023년 가장 평화로운 나라 1위가 아이슬란드라고 합니다. 163개국 중에서 한국은 43번째, 북한은 149번째라고 하는데, 북한에도 복음의 등불이 비추어져서 함께 평화롭게 되면 좋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 평강, 평안은 모두 샬롬인데, 우리는 평안을 너무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에 참 평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자꾸 엉뚱한 것을 쫓게 됩니다. 오늘은 이 땅에서 평안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평안이 나와 상관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자기가 상황을 만들려 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나라가 영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한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선지자의 제자를 통해 북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십니다. 신복들은 선지자의 제자를 보고 '그 미친놈이 뭐라고 했냐?'고 묻습니다. 예후는 신복들이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골방에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신복들은 요람 왕보다는 예후 장군을 자기들의 주군이라고 여겨 반역에 가담합니다. 예후는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고 자기 의로 모반을 일으키지만, 이 모든 상황은 모두 하나님이 계획하고 준비하신 일이지 예후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악인은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은 평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악한 자를 들어 악을 심판하시기에 내 손으로 복수하려고 하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평안한 사람은 하나님이 뜻하신 때를 잘 기다립니다. 나에게 주신 이 자리가 사명의 자리인 것을 알고, 내 환경에 감사하는 만큼 평안해집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상황마다 감사하고 하루하루 순종하면서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평안입니다.
둘째, 헛된 평안을 구합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예후는 길르앗 라못의 출입을 봉쇄하고는 곧장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에 있는 요람을 죽이러 미친 듯이 달려갑니다. 명분이 있는 것 같지만 자기 욕심 때문에 반역이 들키고 실패할까 봐 불안합니다. 불안을 없애려는 모든 노력과 수고는 결국 더 깊은 불안을 일으킵니다. 문제를 문제로 덮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는데,
세상은 힘으로 평화를 누리려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안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힘을 얻으려고 수고하고 싸우는 헛된 평안을 구하면 참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미치게 병거를 몰아도 예수 이름으로 구한 것이 아니면 평안이 없습니다. 그 시각 요람은 이스르엘에서 회복이 되었지만, 병사를 보내 '평안하냐?' 전황을 묻습니다. 예후는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고 답하는데 이 말은 '자신이 요람 왕을 제거할 것이다. 승리는 자기편이니 죽기 싫으면 자기편에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요람은 평안이냐고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회개하여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평안을 물을 자격이 있습니다. 요람은 두 번이나 병사를 보내 평안하냐는 질문을 예후에게 던집니다. 자기는 이스르엘 궁궐에 누워있지만, 아람과의 전쟁은 아버지 아합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벌였기에 반드시 이겨야 했습니다. 수고는 하나도 없이 열매만 딱 바라고 있는 모습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는데 우리는 십자가는 너무 싫고 영광만 좋아합니다.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사건이 와도 평안하려면 구원을 위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기로 결정하면 그 순종에 주님이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셋째, 악을 끊지 못합니다. 그래서 평안과 상관이 없습니다.
파수꾼이 요람 왕에게 오고 있는 사람이 예후라고 보고하니, 그를 철석같이 믿고 의지한 요람은 바로 병거를 타고 나섭니다. 같이 있던 남유다 아하시야 왕도 죽으러 가는 길인지도 모르고 같이 나섭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병거를 타고 만난 장소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토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봇을 죽이고 토지를 빼앗은 아합과 이세벨의 집을 심판하십니다. 요람은 예후를 신뢰하여 직접 '평안하냐?' 물었지만, 그는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떻게 평안하겠느냐?'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세벨의 음행은 우상숭배고, 술수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나봇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인 악행입니다. 요람이 이 악을 끊어내야 하는데 악행을 이어가고 유다까지 악으로 물들이니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요람을 처단하게 하십니다. 예후는 너무도 악한 시대 심판의 도구로 필요한 역할이었습니다. 항상 악한 자는 악한 자가 치는 것이 맞습니다. 어떤 경우도 내가 복수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만 주시면 제가 주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기도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이자 끊어야 할 욕심입니다. 이 악을 끊지 못하면 평안할 수 없습니다. 끊을 수 없는 악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악과 정반대에 있는 구원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법대 나와서 다시 의사가 된 집사님이 양육 숙제로 「면접」 독후감을 쓴 내용입니다. 아이가 셋인데 공부방 비용이 올라 남편의 병원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남편이 알려준 구직사이트에 솔직하게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았습니다. 주 1회 검진센터에서만 일하는 조건인데, 면접에서 '저는 외래 경험이 적고 휴직 기간이 길다, 살림과 육아에 올인하느라 배운 걸 다 까먹었다, 소아 진료 경험도 거의 없다,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도 두렵다, 교육비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교회를 가야 해서 목요일만 가능하다'고 했답니다. 이분이 진실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합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력서를 쓸 때부터 마지막 진료 일까지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붙들었다고 하니 이분이 평안과 상관있는 분이 맞습니다.
여러분, 자기가 상황을 만들고, 헛된 평안을 구하며 악을 끊지 못하면 평안이 없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 지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주는 평안밖에 없습니다. 평안과 상관이 없는 이 시대에 죄를 감추려고 나의 의로 힘써 하나님의 의를 막는 일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날마다 평범하게 오늘 들은 말씀만큼만 예수님을 따라 살며 진정한 평안과 상관있는 우리가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