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를 보았다]
요 20:10~18
여러분이 만약 큰 기대를 하고 높은 빌딩 전망대나 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구름이나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 풍경을 보지 못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고난 주간 동안, 팔복산 기도회에서 요한복음 큐티를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팔복산 정상에 올랐는데, 무엇을 봐야 할까요? 바로 부활하신 주를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보고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칩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통해서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했는지 우리도 오늘 그 과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문제 때문에 울 때 의외의 천사를 만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주일 새벽에 예수님 무덤에 갔는데, 무덤을 막았던 돌문이 열려 있고 시신이 없어졌습니다. 누군가 예수님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한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지만, 두 제자는 무덤 안팎을 확인하고는 그냥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힘든 문제를 외면하고 회피하기 바쁜 우리 모습과 너무 같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앞에 서 있습니다. 문제가 일어난 자리,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서서 울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로 일곱 귀신까지 들린 죄 많은 밑바닥 인생에, 가족도 없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육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인생의유일한희망이었던예수님이십자가에서돌아가시니,날마다예수님 무덤에 찾아오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으려 했는데 시신을 도둑맞아 엉엉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마리아에게 '왜 우냐?'고 묻습니다. 천사들은 이 일이 울 일이 아니다, 울지 말라는 뜻으로 물었지만, 마리아는 예수님 시신이 없어진 문제에만 집중하니, 질문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우리도 내 문제만 생각하고 내 생각대로 들으면 다른 사람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아프고 슬프고 늘 반복되는 싸움 때문에 지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처럼 연약하고 아픈 죄인을 살리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다 죽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이 시간 찾아오십니다.
둘째, 의외의 환경에서 양육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우리는 내 상황이 급박하면 사건만 쳐다보느라 예수님이 안 보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돌아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주님을 앞에 두고도 동산지기인 줄 알고 주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리아야, 어찌하여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고 하십니다. 마리아가 왜 우는지 주님은 이미 아시지만, 말씀으로 양육하십니다. 고난은 피하라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라고 돌이키라고 오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은 낭떠러지로 질주하던 우리를 멈춰 세우는 신호등이자 가로막입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힘으로 못 만납니다. 그래서 부활의 예수님이 전혀 생각지 않은 장소와 사람을 통해서 오십니다. 예수님은 울고 있는 그 문제에서 주님께로 시선을 옮기라고 마리아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는 그제야 비로소 살아계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주님은 형편없는 나를 먼저 찾아오시고, 울고 있는 내 옆에서 이 모습 그대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냥 살아날 줄 믿습니다.
셋째,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사명 감당하게 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 예전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생각이 나서 예수님을 붙들려고 합니다. 힘들 때는 돌이키다가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으니 다시 행복했던 때를 꿈꾸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붙들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제는 새로운 부활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타적으로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내 인생의 결론은 성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성경에 목이 말라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어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쳐야 합니다.
제 남편은 하루 만에 소천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처럼 미약하고 내놓을 것 없는 제게 에스겔 18장의 말씀을 응하게 하셔서 남편이 천국 갔다고 하시며 저도 마리아처럼 사명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장례를 치르며 남편이 살아서 함께 근사하게 믿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고, 그날 구원이 돼서 울고 또 해석이 안 돼서 울었습니다. 그날 밤 남편의 시신 앞에서 큐티와 성경을 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은 공평한 일이라고 하시며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며 '양재야!' 불러주셨습니다. '지금 누구를 찾니? 어찌 울고 있니? 에스겔 선지자도 하루아침에 아내를 데려갔단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표징의 선지자가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벽주의인 남편은 산부인과 의사로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간 검사를 했는데, 간암으로 하루아침에 육이 무너지니 산부인과 의사로 낙태한 죄를 고백했습니다. 회개하고 난 후부터 남편은 제 걱정만 하며, 본인의 장례식을 본인 없이 치르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남편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기도한다면서 남편에 대해 몰랐습니다. 남편이 힘들어서 이혼을 생각하고 죽을 생각을 했던 제 사랑의 넓이와 깊이가 얼마나 얄팍한지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니 지금까지 눈물이 마른 적이 없습니다. 제 남편은 안 변할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그때부터 남편으로부터 주어지는 육신의 기대를 내려놓고 지체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치는 사명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내 사건에서 살아난 것은 위안받는 정도가 아니라 증거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의외의 환경인 배우자의 배신과 질병의 문제 자녀의 문제를 통해 양육해 주시고 주님이 불러 주시는 그 이름을 듣고 돌이켜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질곡에서 '내가 주를 보았다!' 증거하며 성경이 응하는 인생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