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같이 되었고]
왕하 7:12~20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과 같이 되었고는 심판과 부활을 다 포함한 말로, 좋은 말씀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 나병 환자들이 증인이 되어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나병 환자들이 전한 아름다운 소식에 사마리아 궁에서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성공이 아니라 멸망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병환자 네 사람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지만, 여호람 왕은 이것이 자신들을 텅빈 아람진영으로 유인해 매복했다가 잡아가고자 하는 기만전술이고 유인책이니 그 작전에 말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전략을 간파한 자신에게 도취 되어 신나게 썰을 풉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최고이니 늘 성공에 목말라하고, 성공만 인정하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본문에 왕도 나병환자도 위기상황에서 똑같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왕은 부요한 환경에만 있어 굶주려 본 적이 없으니 상아궁에서 태평하게 자다가 일어나 심판의 길로 가고, 나병 환자들은 해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군대로 향해 구원의 길로 갑니다.(5:7) 그리고 평소 신하들은 늘 왕의 비위를 맞추며 할 말을 못 하였는데, 지금 이 상황을 위기라고 판단한 한 신하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있는도 아니고 멸망할도 아니고 이미 멸망한 무리이며 끝났다고 하며 냉혹한 현실을 전합니다. 그리고 정탐하지 않고 성 중에 머물러 있어도 어차피 굶어서 아사할 것이 자명하니 성안에 남아있는 백성들이 남은 말 다섯 마리를 보고 아직도 이만큼 남았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처럼 멸망한 것을 인정하고 가슴치고 애통하며 자기 죄를 봐야 합니다. 다행히 현실적으로 아사 직전에 있으니, 신하의 요청을 듣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난이 참 축복입니다. 여호람은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소식이 사실임을 결국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와 엘리사가 그렇게 왕실 옆을 맴돌고 쫓아다니면서 말씀으로 외친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모두 가슴을 졸이면서 아람 진영에 도착했는데 그들이 아람으로 도망친 것이 맞았습니다. 귀로만 들었던 아름다운 소식을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굶주렸던 백성은 성문으로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고 남은 식량을 또 성안으로 가져옵니다. 이렇게 식량이 공급되니까 갑자기 식량 가격이 하루 만에 뚝 떨어져 모든 백성이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백성이 아람 진영을 노략했다고 기록하는데,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다 똑같아서 하나님의 은혜에 있지 않고는 노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후에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아람 군대가 도망친 것을 우연으로 여긴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참 우연을 좋아합니다. 잘 된 것은 자기 덕이고 안 된 것은 최대한 남 탓이고, 고정관념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은 다 우연으로 치부합니다. 이유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불신이자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의 최고 원인이심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연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모든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오늘 말씀대로 적용하며 살아갈 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셋째, 자기 생각이 아닌 믿음으로 (말씀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들은 백성이 일제히 성문으로 몰려드니 여호람 왕은 믿음직한 장관을 책임자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눈이 뒤집혀 노략질하는 무리를 반드시 진압하겠다는 장군의 결연한 의지는 소용없었습니다. 평생 높이 쌓아 올린 장관의 인생이 한순간에 아무 이름도 없는 군중에게 밟혀 허무하게 죽습니다. 그때라도 살려달라고 기도했으면 천국 갔을 텐데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이것도 현상만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우연히 일어난 사고 같습니다. 그런데 장관에게만 심판이 임했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있기에 날마다 말씀과 같이 되었고의 인생이 최고의 심판과 구원을 가져옵니다. 자리가 높고, 똑똑할수록 나는 옳고 너는 다 틀렸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틀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망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 줄 모릅니다. 장관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되는 구원을 보기는 보겠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는 말씀대로 심판을 받고 저주의 인생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성문 앞에 죽을 것 같은 환경에 있는 나병환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인생은 밑동 잘린 나무같이 짧습니다. 우리 모두 똑같이 죄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이 지혜로운 대답이고 결정입니다. 그래서 큐티는 가끔 하거나 몰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지혜가 필요한 인생입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 2년 전에 황윤길과 김성일은 일본 대사로 다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평가를 하였습니다. 황윤길은 그의 눈에 광채가 있고 굉장히 큰일을 할 자라고 했고, 김성일은 쥐새끼 같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선조는 김성일의 말을 들었고, 한 사람의 판단 실수로 나라가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살아났습니다.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음의 분량만큼 사람 분별이 되는데,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뱃속에서부터 말씀으로 키워 우리들 교회에서도 대통령도 나오고 최고의 사모도 나오고 뭐든지 최고가 나올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밑동 잘린 나무로 이미 멸망한 인생입니다. 우연은 우상숭배입니다. 단 한 가지도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이루어지기에 자기 생각이 아닌 믿음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우연이 아닌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구원을 이루는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