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열왕기하 7:12-20 제목 <말씀과 같이 되었고> 김양재 담임목사님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이제가서 알리려면 말씀이 가장 큰 무기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생명과 사명과 안식이 중요한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같이 되었고는 심판과 부활이 다 포함됩니다. 좋은 말씀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같이 되었고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가장 저주받은 나는 30대 과부 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기뻐하는 아내를 하루 아침에 데려가시고 슬퍼하지 말라. 이 일은 공평하다. 표징이 되리라. 하시는 그 날 말씀이 믿어진 것은 그 날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36년 지난 지금 그 말씀과 같이 저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1. 말씀과 같이 되었고는 첫째로 성공이 아니라 멸망을 인정해야 합니다.
12절 : 왕이 밤에 일어나 그의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들이 우리가 주린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 진영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성읍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읍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하니
나병 환자 네 사람이 전한 아름다운 소식이 군대 보고 체계를 통해서 여호람왕에게 밤에 긴급속보로 알려집니다. 굶주리고 있는 사마리아인은 그야말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호람이 액면 그대로 복음으로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호람은 아는게 많습니다. 이세벨이 여호람에게 과외를 엄청 시킨 것 같습니다. 그의 머리속에 단어 두 개가 번쩍 떠오릅니다. 기만전술과 유인책 입니다. 아람 군대가 지금 우리를 속이는 기만전술을 쓰는데 배고픔에 지친 우리가 텅 빈 아람 진영을 보면 앞뒤 안가리고 나올것이고, 그러면 매복해 있다가 우리 부대를 잡고 그 길로 우리 성까지 들어와서 전쟁을 승리로 끝내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작전에 말리면 안된다는거죠. 아람이 워낙 우리의 불말고 불병거를 보고 도망가지 않았섰냐? 우리가 두려워 유인책을 쓰는 거야. 여호람은 이런 엄청난 전략을 간파한 자신이 뿌듯하고 위풍당당 합니다. 너무 똑똑한 자기 자신에게 도취가 돼어 신하들에게 썰을 풀었습니다. 책 한권 읽었다고 그렇게 성경 앞에서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 많습니다. 어리석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여호람은 왕의 자리에만 있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온 적도 없고 내려 올 생각조차 없습니다. 늘 자신이 최고이기에 늘 성곡에 목마르고 더 큰 성공을 갈망합니다. 왜냐? 굶어본 적도 없고 돈은 없어 본적이 없어 개념이 없습니다. 성공밖에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왕의 자리에 있는 게 다 좋은게 아닙니다.
가난한 나병 환자들이 아람 군대로 가기 위해서 해 질 무렵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12절 보면 왕도 밤에 일어났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일어나서 구원의 길로 갔는데, 부요한 왕은 굶주라자 않으니까 궁에서 쿨쿨 자다가, 태평하다가 심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왕은 나병환자들이 공동체에서 쫒겨 난 자들이기에 당연히 나병 환자들의 말을 아주 무시합니다. 우리도 여호람처럼 열심히 육체를 따라 판단하며 삽니다. 평상시의 여호람이 이렇게 신나서 썰을 풀면 신하들은 자기의 목줄이 달려 있으니 이구동성으로 예 옳습니다. 맞습니다. 맞장구 쳤겠지만 지금은 나라가 초 위기 상태이고 먹을게 없다보니, 신하 한 명이 그래도 믿는 공동체라고 자기 역할을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13-14절 : 그의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마리를 취하고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소서 그것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그들이 병거 둘과 그 말들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지금 완전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 안에서 꿈만 꾸려고 하는 왕에게 정신 차리라고 찬물을 끼얹듯 이 신하가 냉혹한 현실을 전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남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멸망한 물이라고 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끝났습니다. 정탐하지 않고 성중에 머물러있어도 어차피 굶어서 아사할 것이 자명하니까 성중에 남아 있는 말 5마리와 성 중에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아직 이만큼 남았는데....이러면 안됩니다. 멸망한 것 좀 인정하고 자기 죄를 봐야 하는데 여호람이 거부합니다. 그래서 신하가 설명해야 합니다. 여호람은 내가 누군데? 교만과 거만의 자기 최면에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도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라는 단어가 여호람에게 비수처럼 꽂혔는지 그보다는 워낙 굶주렸기에 신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가난이 축복입니다.
그래서 결국 여호람은 수색대를 보내 아람 군대를 정탐하게 합니다. 이미 멸망한 내 나라 내 왕권 내 인생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듣다가 안듣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을 듣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신하의 말을 듣고 이제 아름다운 소식이 사실임을 확인 할 수 있게 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왕실 옆을 멤돌며 스토커처럼 쫒아다니면서 말씀으로 외친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교양있는 사람은 못 외칩니다. 좁은 길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내 자신을 아는 것은 내 가능성과 소망을 아는게 아닙니다. 내가 100%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성공한 인생 되기를 꿈꾸며 '할 수 있어' 를 외친다고 구원을 얻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인생이 이미 멸망했음을 인정하면 거기서부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다고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1차 2차 3차 한계 상황의 흉년이 와야 들리는 것입니다. 말씀과 같이 되었고의 인생은 성공이 아닌 멸망을 인정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성공이 아닌 멸망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아직도 이만큼 남았네 가 사명 입니까? 자기 최면입니까? 이러나 저러나 100% 죄인임을 인정합니까?
2. 두 번째는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5-16절 : 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 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니 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모두가 가슴 졸이며 아람 진영까지 겨우 도착을 했는데 진영이 비워 있었습니다. 매복이 있는지 수색을 해보니 아람 군대가 강을 건너기 전에 버리고 간 의복과 병기가 길에 가득하였습니다. 매복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아람으로 도망친게 맞았습니다. 귀로만 들었던 아름다운 소식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은 나병환차 4명이 전한 의심스러운 가짜뉴스가 아니라 팩트체크 거친 진짜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았던 사마리아 백성은 이제 아름다운 소식에 기뻐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누가 명령을 하지도 않았는데 서로 눈이 뒤집혀 성문을 향해 달렸습니다. 전력질주하여 진영에 도착하여 식량을 배로 쓸어담고, 한 손으로 입에 넣고 한 손으로 보자기에 쌓고 아주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백성이 아람 진영을 노략했다고 기록합니다. 씨름 한 번 하지 못한 이 백성은 노략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같이 되었고의 승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 똑같아서 돈 앞에서는 눈이 뒤짚혀집니다. 공짜란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을 참 좋아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불신이자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에 최고의 원인이심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은 곧 우상입니다. 이 사건이 지나고도 여전히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절대 우연이 아니고 이유가 있는 일입니다. 우연이 아니고 여화와 말씀과 같이 되었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결혼도 우연이 없습니다. 천개중에도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연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고 우상숭배 입니다. 어떤 일이든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인이시고 이유이시고 목적이고 상급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자꾸 이유를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 생명은 어떤 모양이라도 소중한 것이고, 어떤 상태에 처한 가정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믿고 살아갈 때 오늘 내가 말씀대로 적용하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과 인내는 반드시 말씀과 같이 되는 복된 인생일 줄 맏습니다.
<적용질문>
아직도 우연히 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회피하거나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팩트 체크하고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내 인생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다고 간증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 말씀과 같이 되었고의 세 번째는 자기 생각이 아닌 믿음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17-20절 :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한 바와 같으니 이르기를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한 즉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아름다운 소식을 들은 백성은 난리가 났습니다. 일제히 성문으로 나가려고 몰려드니까 왕은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서 성문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여호람왕은 제일 믿음직한 한 장관을 책임자로 세워서 보냈지만, 노략질 하는 군중을 막을 자는 없습니다. 군중들은 눈이 뒤집혀 졌습니다. 고함을 치고 군사를 동원해서 몽둥이로 때려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장관은 내가 누군데 꼭 백성을 진압하겠어 했지만 아무 이름도 없는 군중들에게 밟혀 죽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했으면 천국 갔을 텐데 끝까지 그 장관은 자신의 생각 때문에 심판 받고 간 것입니다. 마치 이것도 현상만 보면 특별한 이유가 없이 우연히 된 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사건도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의 심판임을 분명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시스템이 문제야? 배후가 있어? 란 생각은 우연을 신봉하는 우상숭배 입니다. 우연히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각자 돈이 중요하고 자리가 중요합니다. 7장 1,2절 말씀과 끝인 20절 똑같은 내용이 똑같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신임을 받고 왕의 명령을 잘 해냈던 이 장관이 무엇을 못합니까?
믿음의 대답을 못합니다. 왕의 말에 자기 확신으로 막힘 없이 술술 이야기 했습니다. 이 대단한 능력자가 하나님의 말씀에는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말에 어찌 그런 일이 있으랴? 반문하며 하늘에 창을 내신들 그런 일은 일어 날 수 없다. 하나님도 그런 일은 하실 수 없다. 자기 생각이 가득한 대답을 합니다. 믿음으로 대답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소식을 받기를 거부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인데도 거부합니다.
선악과 먹고 죄가 들어온 이 세상의 세속사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입니다. 자리가 높고 똑똑할수록 자기는 옳습니다. 곧 예수님 하나님도 틀린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안받아 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망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말씀이 안들립니다. 망한 적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거슬으고 있는 그 본모습을 다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되는 구원은 보기는 보겠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말씀과 같이 그의 인생이 심판과 저주의 인생으로 끝납니다. 보기만 하고 먹지 못하는 인생, 구경만 하고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결국 성문 앞에서 죽을 것 같은 환경에 있는 나병환자 보다 못한 장관입니다. 나병환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좁은 길입니다.
본문에서 장관만 죽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심판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우리 편이 아닌 장관을 욕하면 안됩니다. 백성도 똑같이 노략질 한 주제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이 지혜로운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QT를 수액 맞듯이 가끔 하면 안되고 매일 해야 합니다. 사건이 올 때 적용해야 합니다 . 우리는 이미 멸망한 인생입니다. 밑둥짤린 나무 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매일 들어야 합니다. 나를 살리시는 말씀으로 QT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폭풍 질문이 몰아칠 때 비난의 말들이 폭풍처럼 쏟아질 때 QT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길로 놓고 성령님께 지혜를 달라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주님 제 입술을 지켜주세요 할 말을 알려주세요' 믿음으로 대답할 때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의 복 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내가 모를 때 하나님 제가 대답하게 도와주세요.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이 입술을 지켜주시고 할 말을 알려주십니다. 말씀 가지고 회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십니다.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 옆에서있더라도 안 믿습니다. 장관이 아니라 왕이라도 안믿으니까 다 죄 가운데 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왕이 내 말을 듣던 안듣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말씀데로 이루어 지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예언입니다.
<적용질문>
대답 한마디로 내 모든 게 드러나서 심판을 당한 일이 있습니까?
그 사건은 이제 구원의 사건이 되었습니까? 기억하기 싫은 흑역사로 남아 있습니까?
오늘부터 다시 심기일전하여 매일 큐티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