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찌 받을때이냐]
왕하 5:20~27
이방 나라 아람에 살던 나아만 장군은 구원받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는 인생이 됩니다. 반면 엘리사의 비서 게하시는 예물을 받지 말아야 할 때인데 받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나병에 걸립니다. 오늘은 게하시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따르지 말아야 할 게하시의 탐심과 책망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맹세와 탐심을 분별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예물을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환인 게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예물을 받아내겠다고 맹세합니다. 여기서 받으리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치밀한 계획 가운데 일인칭인 내가 받아내겠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보면 탐심은 멈추어야 할 것이지만, 구속사적인 맹세를 한 결단과 적용은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게하시는 구속사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기의 마음, 생각, 감정, 자존심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것을 내가 복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는 엘리사가 자신의 의로움과 공로 때문에 물질을 거절하고 기근으로 굶고 있는 생도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분하게 여기며 정죄합니다. 그는 스승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한 것입니다. 우리의 탐심과 맹세를 분별하려면 구속사적 말씀으로 생각하며 선택해야 합니다. 게하시는 엘리사 옆에서 기가 막힌 구속사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구속사를 이해하고 좋아해도 적용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을 구속사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하는 훈련을 해야만 탐심과 맹세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둘째, 탐심은 거짓을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하시가 얼마나 요란하게 달려갔는지 수레를 타고 가던 나아만이 보고 직접 수레에서 내려 '평안이냐?'고 묻습니다. 이에 게하시는 태연하게 '평안하나이다.' 하며 거짓으로 대답합니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마음이 바뀌어 예물을 달라고 요구하였고, 젊은 선지 생도 두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고 한다고 치밀하게 거짓말을 합니다. 또한 의심을 피하고자 나아만이 주려고 했던 예물의 양보다 훨씬 적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요구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오히려 은을 두 배나 많이 준다고 하니 당황했지만, 그럴듯하게 거절하며 탐심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게하시는 그 물건을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냅니다. 이때 엘리사는 '네가 어디서 오느냐?' 물으며 게하시에게 죄를 고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불쑥 거짓말을 합니다. 갑자기 나온 거짓말은 평소 습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치밀한 거짓말보다 더 심각합니다. 우리는 다 게하시입니다.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외친 백성도,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를 비난한 가룟 유다도 속으로 자기 이익을 계산합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 척하는 게하시가 우리 속에 있습니다. 탐심은 거짓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추려고 거짓말하고 채우려고 거짓말하고, 이 거짓은 사명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셋째,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수넴 여인의 고통은 엘리사에게 말씀해 주지 않았지만, 이번 게하시의 일은 엘리사가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밝히 알려주십니다. 위대한 장군 나아만을 너무 쉽게 속였던 게하시에게 속일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한 이때에 구원을 위한 적용이 너무나 중요한데 탐심에 눈이 먼 게하시는 무엇이든 받을 생각만 합니다. 이렇게 욕심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이나 옷이나 무엇이든지 받을 때냐?'고 게하시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에 대한 꾸중과 양육은 치리로 이어집니다. 탐심에 눈이 멀어 사명을 잊고 거짓말로 자기 배를 채우려고 했던 게하시는 나병을 얻었고, 자손까지 영원토록 이어지는 무서운 벌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최고의 세팅이 나병이었던 것입니다. 안 걸리고 지옥에서 영원히 벌 받는 것보다, 걸려서 평생 죗값을 치르며 회개하다가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상을 받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큰 유익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고난은 결코 재수가 없어서 온 저주가 아닙니다. 어떤 모양의 고난이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데는 다 구원의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고난은 주님의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하다는 구속사적인 고백을 하는 것이 이 땅 최고의 축복입니다.
오늘은 저희 언니 선교사님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지난주 언니 선교사님이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고 금요일에 천국 환송 예배를 드렸습니다. 언니는 좋은 학벌로 교만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는데, 결혼, 이혼, 재혼의 삶을 평생 회개하며 26년간 빈민가 선교를 하였습니다. 필리핀 선교 당시, 기지촌 여자들을 전도했던 것 때문에 미군이 철수할 때 건축 자재를 주어 교회를 지었고, 큰 지진이 났을 때 이 교회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필리핀에 뼈를 묻겠다고 했는데 치매 증상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모셔 왔습니다. 게하시에게 나병이 눈같이 발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축복이듯 언니도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언니의 이혼을 통해 저는 일평생 이혼을 말리며 가정 중수를 외치며 왔고, 언니는 1년에 600명이나 복음을 전하시고 영접시켰습니다. 우리 집안이 다 교만해서 이 나병 때문에 처절하게 깨닫고 결국 사명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없는 성도 여러분도 교회가 영의 가족이 되어서 여러분을 문안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안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지금이 어찌 받을 때냐?'고 책망받지 않으려면, 구속사적인 맹세와 탐심의 맹세를 분별하고 치밀하게든 습관적으로든 거짓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한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엘리사의 슬픔을 기억하며 지금이 받을 만한 때가 아니고 줄 때라는 걸 알아, 맘몬 신을 버리고 구속사의 하나님을 만나 엘리사처럼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는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