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주소서]
왕하 5:1~8
여러분은 부탁을 잘 하시나요? 부탁은 자칫하면 무능력해 보일 수 있어 주저하게 되는데, 겸손하고 낮은 마음일 때 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람의 위대한 장군 나아만은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이스라엘로 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부탁이지만 나아만 같은 유명한 장군에게는 너무 어려운 부탁입니다. 그런데 고쳐주소서!를 해야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쳐주소서를 외치기 위해 본문에서 어떻게 말씀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복음 전하는 위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적국 아람은 벤하닷 2세가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며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고, 아합은 이때 전사하였습니다. 나아만은 바로 이때 공을 가장 많이 세운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이나 나아만 자신은 몰랐지만, 이 위대한 승리는 사실 아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또한 나병도 하나님만이 낫게 하시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은 장수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얻었지만, 그에 대한 마지막 소개는 나병 환자입니다. 이 질병 하나의 무게가 모든 찬란한 수식어의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잡아 온 어린 소녀 노예가 있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계집종으로 이름도 나오지 않았지만, 고통받고 있는 나아만을 보며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납치해 온 원수이지만, 그를 불쌍히 여겨 살길을 알려줍니다. 어린 소녀이고 종이지만 주님을 만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옳고 그름으로 나가지 않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할 때 그곳에 예수가 전파되고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 원수에게조차 차별 없이 복음을 알려주는 그 믿음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위대하기에 그 복음을 전하는 소녀가 진짜 위대한 사람입니다.
둘째, 나병 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강대국 아람의 모든 의술과 주술을 다 동원해도 고칠 수 없는 나병이었는데, 그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적국 이스라엘에 있다고 하는 여종의 말을 듣고 선지자를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병이라는 고난 때문에 믿음 없는 이방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낮은 마음으로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아람 왕은 자신이 아끼는 장군 나아만을 고쳐 달라는 친서와 많은 예물을 보내며 북이스라엘 여호람 왕에게 부탁을 합니다. 아람 왕이 나아만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100% 죄인이기에 사람은 사랑을 만들 수도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속았다면 100프로 내 잘못이고, 내가 100% 잘했어도 의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심과 분별은 다릅니다. 육이 무너지는 고난이 없으면 누구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볼 수 없습니다. 고난을 당해야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내가 아는 것과 능력, 생각, 의지에 한계가 있구나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고난을 당해 낮은 마음이 될 때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실 내가 스스로 하나님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난이 왔을 때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시고, 영적인 약인 구약과 신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구나! 깨닫길 바랍니다. 그리고 큐티를 통해 내 고난에 대한 주님의 뜻을 묻고 말씀의 약을 먹는 축복의 타임이라고 여기시길 바랍니다.
셋째, 옷을 찢는 탄식에도 응답하십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며 당신은 왕을 고쳐주소서! 부탁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하나도 없는 여호람은 아람 왕이 불가능한 요구를 통해 전쟁의 명분을 쌓는다고 생각하여 옷을 찢으며 화를 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여호람의 옷을 찢는 탄식조차 들어 응답하십니다. 이 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며 '왕은 나병을 고칠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다는 소식이 진짜인 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이는 '나아만의 나병 고치는 일은 하나님과 선지자의 일이다. 당신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책임질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 없는 여호람의 탄식에도 응답하시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듣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교회와 목장을 떠나지 말고 붙어 있기만이라도 해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대기업 S그룹에 다니시는 한 목자님께서 교회에서는 마을지기가 되시고, 직장에서는 지금까지 인정받았는데 최근에 승진이 누락되었다고 합니다. 업무를 제대로 못 하겠다는 생각에 두 달 동안 마음대로 놀았는데, 공허함과 불안함이 엄습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춤 연습을 하는 아들에게 '너는 지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느라 춤추니?' 하고 물었더니 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 생각만 하면 기뻐.'라고 했습니다. 나는 뭘 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순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모든 일에 순종하면서 승승장구하시다가 갑자기 안 되는 상황을 만나니 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입니다. 그래도 붙어있으니까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이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정하신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오직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지식을 알려주신 것처럼, 오직 교회를 통해 우리를 천국으로 불러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인 교회 안에 거할 때, 주님이 연약한 우리를 때마다 분량대로 고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고쳐주세요!' 기도할 때, 믿음 없는 우리의 외침과 탄식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약속의 말씀으로 응답하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