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는지라]
왕하 4:31~37
우리는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뭉쳐진 죄인이기에 평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눈을 뜨게 되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눈을 뜨게 하시는지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엘리사의 지팡이라고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시킨 대로 지팡이를 죽은 아이의 얼굴에 놓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게하시의 사역으로는 엘리사의 지팡이라도 깨우지 못합니다. 유명한 설교를 그대로 하고 흉내를 내어도 진실하지 못하면 결정적으로 사람을 살리기는 어렵습니다. 게하시의 연기는 구원을 위한 수넴 여인의 연기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대로 흉내 내도 진실하지 못하면 결정적으로 사람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그는 엘리사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기를 과대평가했습니다. 항상 겸손해야 분별이 됩니다. 엘리사가 집에 가보니 수넴 여인이 게스트 하우스를 성전으로 여기고 자기 침상에 아이를 눕혀놓고 왔습니다.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긴 것이 맞습니다. 그동안 여인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겼다면, 아이가 죽은 뒤부터는 여인이 직접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여인은 이 사건이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주신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성경이 깊은 진리로 다가오니까 암초가 아무리 깊어도 더 깊은 깨달음으로 암초를 넘어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달을 수 없고 사건이 오고 갈 때 주님의 공로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수넴 여인은 갖춰진 환경에서 아들을 잃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잃으신 아픔을 체휼하게 되었고, 하나님보다 더 큰 평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감당 못 하는 수넴 여인의 믿음을 엘리사가 알아보았고, 여인이 그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것을 알고 죽은 아이를 잠에서 깨우기로 결단합니다.
둘째,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엘리사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는데, 이제부터 일어나는 모든 헌신이 보여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넴 여인도 아이를 침상에 놓고 문을 닫았습니다. 방 바깥에 있는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엘리사는 가장 먼저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곧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닌 대화이기에 기도의 대상인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약속을 알고, 그 뜻을 알아 적용해서 순종합니다. 기도하다의 히브리어 팔랄은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가 개인의 간구를 넘어 공동체와 지체를 위해 간곡히 호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자신을 판단하다, 통회하다라는 뜻도 있는데, 간곡한 기도에는 늘 내 죄가 보이는 통회가 따라옵니다. 엘리사도 선지자로서 많은 기적을 보였지만 가장 고쳐주고 싶고 사랑하는 수넴 여인의 아들은 살리지 못하니 통회 자복합니다. 지금까지 기적을 일으키신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니까 낮아지고 낮아져서 저절로 회개가 나오고 간곡히 중보기도를 하게 됩니다.
셋째, 고정관념을 뒤엎고 엎드려야 합니다.
본문에 엎드리다는 세 번 나오는데 첫 번째 엎드리다는 눕다는 뜻으로 부정한 시체를 살리기 위해서 끌어안는 행동을 말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엎드리다는 구부리다로 그 행동이 가진 영적인 의미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부정함에서 완전히 구별된 사람이기에 시체를 만지면 안 되는데, 엘리야가 자기 생각과 판단과 감정을 꺾고 하나님 손에 맡기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했던 것처럼, 구원을 위해 자신의 고정관념, 판단과 감정을 꺾습니다. 그리고 자기 입을 아이의 입에, 눈을 눈에, 손을 손에 딱 갖다 붙이며 시신 위에 올라 엎드렸습니다. 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이처럼 간절한 기도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랑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그는 거리낌과 의문과 귀찮음을 모두 감수하고 아이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았고, 아이의 몸은 차차 따뜻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을 향한 수고이자 사랑임을 알면 지치지 않고 생색도 내지 않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엎드려 섬기는 수고로 아이는 일곱 번 재채기한 후에 눈을 번쩍 떴고, 죽었던 아이가 부활했습니다. 엘리사에게 아이를 건네받은 여인은 그의 발 앞에서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방을 나가 이제는 내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임을 만천하에 공포하게 됩니다. 엘리사가 처음 그 집에 들어갔을 때가 거룩한 날이라면, 아들이 태어난 날은 너무나 기쁜 날이고, 아들이 죽었다 살아난 날은 더 기쁜 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생 여정에서 더 기쁜 날이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사와 수넴 여인은 자신에게 공로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입니다는 이런 엎드림의 사랑과 겸손이 절대 필요합니다. 엎드리는 사랑은 반드시 부활로 결실할 줄 믿습니다.
미국 뉴욕 주립대 의대 학장인 마이클 로이즌 교수가 당신은 몇 살입니까?라는 저서에서 달력 나이보다 젊어지는 일흔여덟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여러 가지 예를 들었지만, 놀라운 것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30년 더 늙는다고 합니다. 고통의 정도를 지수로 따지면 사별의 아픔은 200%이고 이혼의 상처는 70%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해결할 길 없는 고난 가운데서 영적으로 깨달아서 살아나니까 세상이 감당 못 하는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날마다 젊어집니다.
우리들교회 창립 초창기에 한 학생이 큐티를 올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친구에게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맞받아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지내겠다는 다짐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맞기만 하다 학생부에 불려 갔습니다. 친구는 그동안 제 말투에 기분이 나빠서 쌓였다가 폭발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혈기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내 말투를 고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이 사건을 주셨구나! 깨달았고 바로 그 친구에게 바로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혈기를 참게 되어 감사하고 잘못된 말투도 바로잡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눈을 뜨는지라는 엘리사의 지팡이가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능의 하나님보다 언약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어떤 상황에서도 엎드리셔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살려주셔서 모두 눈을 뜨게 될 줄 믿습니다. 각자에게 온 사건에서 영적으로 깨달아 다른 사람까지 살리고 가는 사명의 인생을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