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입니다]
왕하 4:18~31
수넴 여인은 거룩을 경험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세심한 배려를 하고 말씀을 믿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평안입니까? 내 평생에 가는 길이 순탄하든지 험하든지 태양을 본 사람은 자기 삶이 어떠한지 보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죽었는데 평안이라고 말하는 수넴여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을 믿습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머리가 아파 죽게 생기자, 남편이 사환을 통해 아들을 여인에게 데리고 갔고 얼마 후에 여인의 무릎에서 죽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평소에 성전이라고 여겼던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에 죽은 아이를 두고,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평안을 빌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떠납니다. 23절에 남편이 엘리사를 그자라고 칭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믿음의 수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 남편이라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중요한 사람은 연기를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죽는 힘든 사건 앞에서 '샬롬', '평안을 빌어요'라고 하며 문제가 계속되는 인생 가운데 어떤 경우에도 샬롬, 별일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평안입니다.라고 읊조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사건이 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에게 털어놓습니다.
여인이 엘리사의 거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와 가까운 사이이고 하나님과 그만큼 소통이 잘 되는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갈멜에 있던 엘리사는 여인이 급하게 오는 것을 멀리서 알아보고,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게하시를 통해 평안하냐고 묻습니다. 여인은 게하시가 진실하지 못함을 미리 분별했기에 남편에게처럼 '평안합니다'라고 연기를 합니다. 이렇게 나의 죽어가는 일들을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함구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보자마자 그 발을 안고 힘든 마음을 쏟아냈습니다. 털어놓을 지체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평안입니다. 당시 수넴 여인과 엘리사는 서로 지체가 되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사람이 희귀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주님도 여인이 괴로운 이유를 자신에게 숨기셨다고 하며 여인의 입으로 괴로운 이유를 털어놓도록 했습니다. 자기 말로 쏟아내는 것 자체가 치유입니다. 여인은 드디어 털어놓을 대상을 정확히 알고 소리 지르며 솔직한 마음을 쏟아냅니다. '내가 언제 주께 아들을 달라고 했습니까? 속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합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부르짖은 것은 결국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해도 그가 받아줄 사람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통하는 사람이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대인관계 질서에 순종할 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는 할 말과 안 할 말을 분별하는 것인데, 큐티를 해야 분별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부부목장에서 대출받아야 하는지 물었는데, 받지 말라는 분도 있고, 믿음의 분량대로 받아도 된다고 하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 목장에 가서 또 물으니 '대출받지 않는 게 맞다'고 했는데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세 대금 받은 게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대출을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대출받지 말라는 그분에게 감사했고 모든 원망이 싹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자님의 처방은 '공동체에서 묻고 가면서 권면 받고 처방할 때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는데 그래도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고, 매일 말씀 보고 기도하면 분명히 감동을 주십니다. 시일이 걸리더라도 반대의 처방까지 참고 인내하며 구체적으로 기도를 해야 해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털링 공동체는 믿음 좋은 분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신앙고백이 있으신 분들의 공동체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엘리사는 그 모습이 자신이 엘리야를 따를 때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던 간절했던 마음과 같다는 것을 헤아렸습니다. 수넴 여인의 문제의 핵심은 아들의 죽음이 아니라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을 부르짖습니다. 아들이 주는 평안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떠났고,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던 아들이 죽는 사건이 오니 이것은 내 삶의 결론이다. 헛된 평안,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평안을 누리려고 했구나. 하며 잘못된 평안에 속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진짜 평안은 오직 하나님 곁에 있을 때,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옵니다.
찬송가 413장 내 평생 가는 길의 가사를 쓴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사업가였고 교회를 잘 섬기는 장로였습니다. 부부는 영육 간에 잘 나가다가 첫째 아들을 잃었고 시카고 대화재로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휴식이 필요하여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향하던 중 아내와 아이들을 태운 여객선이 화물선과 충돌하는 사고로 네 딸을 잃었습니다. 큰 시련으로 슬픔에 빠져있던 그는 오늘 본문인 왕하 4장 26절에 평안하냐?는 말씀이 생각났고, 빼앗길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을 기억하고 내 평생 가는 길 찬송을 썼습니다. 사고 후 부부는 세 자녀를 더 낳았는데, 그 중 첫째 아이를 또 잃고 마침내 성공지향 삶의 방향에서 완전히 유턴하여 고아와 가난한 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엄청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털어내고 기도하고 주님을 떠나지 않고 동행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평안입니다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결단코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평안입니다 하며 구원을 위해 할 말 안 할 말을 분별하시는 성도님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