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야 삽니다]
이성훈F 부목사
잠 1:8~19
여러분은 요즘 살고 싶습니까? 죽고 싶습니까? 우리가 죽고 싶은 인생을 살아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길을 주셨기 때문에 피투성이라고 살아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 더 나아가 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들어야 사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듣기 싫어하는 태생적 교만 때문입니다.
잠언에 나오는 많은 명령 중에서 처음 나오는 명령이 들으라. 입니다. 그리고 들으라.는 명령이 열두 번이나 나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듣고 행하는 순종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아비의 훈계를 듣고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은 단지 우리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고, 그 말을 무조건 들으라는 윤리적 가르침만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에 못 나가게 하는 부모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듣고 순종 하는 것보다 구원을 위해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조건 들어야 하는 훈계와 법이 있으니, 아버지를 상징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훈계, 그리고 어미를 상징하는 교회의 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씀과 사건을 통해 훈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지적하여 드러내시며 회개하여 죽지 말고 살라고 훈계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교회 사역을 통해 복음이 뿌려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기고, 양육을 통한 말씀의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시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듣기를 싫어할까요? 일단 들으려면 내 말을 멈추고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내가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가 낮아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내가 제일이고 중심이고 가장 높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의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장착된 아담과 하와에서 비롯된 원죄, 교만입니다. 아름다운 관과 나를 빛내주는 금목걸이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우리는 태생부터 교만하기 때문에 내 생각과 자존심을 나를 빛내줄 관과 금목걸이처럼 차고 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범생으로 살아왔는데, 모범생이기 때문에 말을 잘 듣는 줄 착각하였습니다. 내 생각과 지식이 나를 빛내줄 면류관으로, 자존심이 자신을 지켜주고 자랑스럽게 만들어 줄 금목걸이처럼 여기며 아무것도 모른 채 교만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태생적인 교만으로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대로 살면 다 죽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죽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들어야 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어야만 사는 겁니다.
둘째, 속아서라도 채우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하고, 거기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의 꼬임과 유혹은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들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쓰는 강력한 무기 두 가지가 본문에 나오는데, 하나는 관계이고 또 하나는 돈입니다. 악한 자는 자기를 우리라고 소개하며 외롭고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것 같은 우리로 다가와 유혹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만 따라오면 텅 빈 지갑과 어려운 경제 사정을 한방에 채워줄 수 있다며 속입니다. 외로움을 채워줄 관계와 나의 텅 빈 지갑을 채워줄 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쓰니 안 넘어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은 속지 않을 것이란 확신과 속아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악행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이 더 문제입니다. 속인 사람은 잘못을 알고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속은 사람은 아무 잘못 없이 당하기만 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악한 자의 유혹에 빠져 속아서라도 외로운 마음과 빈 지갑을 채우고 싶은 내 안의 정욕과 탐욕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속아서라도 채우려고 했던 욕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기 때문입니다.
새는 지능이 낮은 동물의 대표주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가 나쁜 새조차도 눈앞에서 자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는 모습을 보면 도망갈 줄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나의 교만과 욕심을 동력으로 삼아서 모든 열심을 다해 달려가며 훈계를 무시하고 듣지 않고 돌진하다가 그냥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한계를 넘어 구원받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말씀이 곧 아름다운 관이고 금 사슬이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인도해 주시고 보호하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구속입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가리켜 황금 체인, 골든 체인이라고 합니다. 나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해주실 하나님께서 사슬 한 고리 한 고리로 연결하셨기에 끊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안다면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큐티하고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으며 모범생으로 신학박사까지 되었지만, 아내라는 킬러 문제를 만나 전쟁을 치르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가정이 깨지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먼저 큐티를 시작하였고, 저는 변화된 아내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 말씀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큐티인으로 마태복음을 1장부터 쭉 묵상하다 어느 순간 성경에 기록된 바리새들이 나의 모습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맹인이고 벙어리였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고난만 겪다가 거기서 끝날 뻔했던 인생에서 나의 실상을 보는 은혜의 관을 씌워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태생적인 교만과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열심대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여기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육신하신 주님이십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다 살아날 줄 믿습니다. 이 생명의 은혜를 우리 모두 함께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