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받읍시다]
왕하 2:19~25
오늘은 6.25전쟁 73주년 되는 날입니다. 남북 이스라엘이 계속 싸우듯 우리나라도 남북이 대치되어서 이렇게 싸운 지 70년이 넘었습니다. 잘 사는 길이 다른 것이 아니고 구원을 위하여 사랑과 심판으로 고침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고침 받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고침받기 원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갈라서 동편에서 서편으로 다시 건너온 엘리사는 여리고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여리고가 위치는 좋은데 물이 나빠서 농사가 안된다고 하소연합니다. 물이 나쁘다는 것은 유산된다는 뜻으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고 죽어간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 6장 26절에서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재건하는 사람은 저주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백 년 후 이스라엘의 아합 시대에 사마리아 성을 쌓고 상아궁을 지었습니다. 부유해지니 여리고성을 건축하지 말라는 성경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다. 당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뜻의 히엘이라는 사람이 말씀을 어기고 재건했다가 두 아들이 죽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재건했는데 저주받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근원을 살펴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오랫동안 저주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에도 때가 되니까 이렇게 고쳐 달라고 엘리사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합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곧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 왔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진짜요 정답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진짜 지식이고 지혜이고,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둘째, 말씀으로 고침 받습니다.
여리고 백성이 말씀에 순종하여 소금을 새 그릇에 담아 가져오자 엘리사는 여리고의 흐르는 샘물의 근원으로 가서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하니 22절에서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고 합니다. 문제의 근원은 주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주님은 그 믿음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사 때마다 소금을 치는데, 소금 언약을 기억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말씀의 소금을 던지는 겁니다. 본질에 소금을 딱 뿌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물의 근원은 문제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문제는 현상이지 그 근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죄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현상만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아무리 시체를 찾아도 바로 앞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다른 시체를 계속 찾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여리고의 문제는 재건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고침은 아픈 이야기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근원에 대고 지지고 말씀으로 고침 받아, 예배가 회복되어 양육도 받고 삶을 나누며 사람 살리며 가야 합니다.
셋째, 심판으로 고침 받습니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야곱이 단을 쌓았던 영적으로 아주 유명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다윗 왕조를 배반하여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못 가는 백성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금송아지를 모셔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23절에 엘리사가 그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수십 명의 작은 아이들, 즉 젊은 청년들이 성읍에서 나와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합니다. 이에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합니다. 이것은대머리라고 놀렸다고 상처받아서 되갚아 준 것이 아닙니다. '올라가라' 하며 엘리야의 승천을 우습게 여기고 빈정거렸기 때문입니다. 승천의 사건을 조롱하는 것은 엘리야의 조롱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한 것입니다. 이는 엘리사가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에 갑절의 영감을 막고 교회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의 저주로 암곰이 나와 42명의 생명을 찢어 죽였습니다. 엘리사는 이 저주의 사역 후에 스승 엘리야가 아세라 바알 선지자 850명을 물리쳤던 그 승리의 장소 갈멜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이 세상 풍요의 신, 물질의 신을 섬기는 자들을 물리친 사건이나 믿음을 상징하는 벧엘에 살면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들을 물리친 것이 같은 사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벧엘의 교만은 심판으로 경고하시고, 여리고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고쳐주셨습니다. 한쪽은 구원으로 고쳐주셨고 한쪽은 심판으로 경고하셨지만 모두 고침받기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심판을 받아야 구원으로 연결되니 심판 또한 하나님의 사랑인 겁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임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평원, 초원, 담당 사역자, 부장, 목자, 권찰, 담당 교사, 여자 목장 목자님까지 여덟 분이 총집합해서 심방을 했고 남친까지 오게 한 후에 말씀을 가지고 양육했습니다. 남친의 부모님이 일찍 이혼했는데 심방 중에 많이 외로웠겠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했답니다. 근원에 소금을 뿌려야 되는데 이럴 때는 아이를 낳는 것이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이 이렇게 적용을 받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아이는 낳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낳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드리고 양육 받고 목장에 참여하며 날마다 악착같이 말씀을 보지 않으면 고침 받을 수 없습니다. 심판으로 경고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구원으로 연결되어 고침 받는 것이 목적임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의 근원을 찾아서 나의 죄 된 영혼에 말씀의 소금이 부어져서 말씀으로 지지고 고침을 받는 성도님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