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길]
왕하 2:15~18
오늘은 우리들교회 창립 20주년입니다. 특별한 날이지만 여전한 방식으로 열왕기하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동양사상이나 세속 철학에서는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여깁니다. 불교에서는 죄의 뿌리를 욕심에 두고 속세와 관계를 끊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깁니다. 유교에서는 불행의 뿌리를 효에 두고, 이슬람은 코란에 대한 불순종에 둡니다. 이 모든 종교가 사람을 잘 살게 하도록 하는 일종의 사역인데 진정으로 잘 살게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잘 사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영감을 받고 엘리야의 떨어진 겉옷을 취해 요단강을 쳐서 물이 갈라졌을 때, 제자들은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엘리야의 승천을 보고 잠시는 엘리사를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갑자기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을 수색대로 보내 엘리야의 시체를 찾으러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들은 엘리야의 승천을 구원의 사건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17절에 엘리사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제자들이 강청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물을 가르는 엄청난 간증이 있기 때문에 농사꾼이어도 그를 인정했지만 갈수록 은근히 무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를 후계자로 세운 것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자신들이 으뜸이 되려는 속내를 감추고 스승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러드리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후계자 자리 탐하느라 시체를 찾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었기에 할 수 없이 허락해 줍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들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체를 찾아야 한다는 제자들의 고정관념이 우리 인생을 낭비하게 합니다. 우리도 목사는 이 정도 해야지!, 집사가 무슨 믿음이 있겠어? 이런 고정관념에 젖어서 차별하지만, 영성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저부터 여자 목사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인정하건 하지 않건 제가 여자라서 사람을 살려내지 못한 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많은 분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눈을 뜨면 오뚜기처럼 세상으로 돌아가는 고정관념과 치열하게 싸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둘째, 양육이 필요합니다.
문자적으로 시체를 찾았던 사람은 신약에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없어져 주를 보지 못해 웁니다. 이는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 같지만, 결국 나 자신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고 직접 물어봐 주시며 양육하십니다. 이렇게 계속 물어주는 것이 최고의 양육입니다. 18절에 보니 제자들은 시체를 찾아다니다가 없으니 돌아왔습니다. 엘리사는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책망합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말을 듣지 않더라도 나중에 구원 때문에 말리셨구나! 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미리 말해놓는 것이 믿음의 부모이고 영적 부모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려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기도하면서 얼마나 신중하게 말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는 사랑하지 않으면 못 할 말입니다. 십자가는 지혜이고 지혜는 타이밍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많은 분이 제 설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성경 본문에 맞추어서 간증과 설교를 하며 성경을 읽히는 이유는 그래야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간증만 해서는 아무도 안 변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의외의 사건에서 주님이 불러주시는 이름을 들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편견 없이 사랑해 주는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너무 절절해 무덤에 갔다가 시체가 없어 울었습니다. 그곳에 주님이 찾아오셨는데도 동산지기라고 하며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못 알아보는 것은 주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과 장소를 내가 결정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의외의 사건으로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시체 찾으러 다니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마리아를 양육하시며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마리아는 그제서야 울던 마음을 정리하고 신앙적으로 돌이킵니다. 주님의 음성이 보이스가 아닌 사운드로 들리면 돌이켜 시체를 찾는 수고를 그치고 실체이신 주님을 보며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제 죽은 시체 그만 찾고 내게 흐르는 눈물과 근심과 한숨이 다 마르는 역사가 충만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공동체 나눔입니다. 중학생 아들이 급식실에서 줄 서서 대기하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 뒤에 있던 다른 반 아이가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한 것이 성희롱 사건으로 연루가 되었습니다. 일이 커질까 봐 너무 염려되는 상황이었는데, 화가 난 아들이 며칠 동안 큐티를 하지 않다가 큐티 책을 다시 펴더니 '레위기가 다 내 이야기네.' 합니다. 그리고 안식을 주신다는 성경 말씀처럼 사건이 조용히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
이 아이에게 의외의 사건이 찾아와 주님이 양육해 주시고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었기 때문에 잘 사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루아침에 남편이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의외의 사건으로 삼십 대에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큐티 본문인 에스겔 18장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저를 만나 주시고 양육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정확하게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표징의 선지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전 세계에 시체 찾다가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치고 가는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내가 시체 찾다가 주님을 보았다고 외치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길입니다. 그러려면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의외의 사건과 말이 안 되는 사건 때문에 힘드시다면, 이 불말과 불수레의 사건에서 주님이 불러주시는 그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시체 그만 찾고 주님과 함께 구원과 사명을 길로 놓고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