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열왕기하 2:1-8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을 멀리 떠난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면 안 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함께 내려가라는 사명의 말씀이 어느새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오늘은 떠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낮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엘리야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달려온 사명의 길에서 이제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아하시야는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했지만 결국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이 그 사람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내려가고 함께 내려갔더니 인간의 힘이 아닌 회오리바람으로 그를 하늘 높이 올리고자 하십니다. 구약에 이렇게 하늘로 올려주신 한 명이 더 있는데, 에녹입니다.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에녹은 가인의 후예들이 화려한 문명과 권세를 누리던 악한 시대에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키우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낮아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이게 하늘에 올리어질 일인 것입니다. 엘리야도 기가 막힌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높은 자리에 올라갈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내시는 낮은 자리로, 또 함께 내려가라는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엘리야는 요단 동편 시골 길르앗에 살던 이주민이었습니다. 그의 출현도, 퇴장도 또한 신비스러운 사건으로 연대측정이 불투명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역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말 낮고 천한 그림자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 즉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신앙 고백적인 이름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엘리사가 있습니다. 천국 가는 구원과 이 땅에서 사명 감당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명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사명을 다 이루시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머무르지 않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40km가 넘는 길갈과 벧엘, 여리고와 요단을 지날 때 엘리사는 그곳에 머무리지 않고 엘리야를 따릅니다. 머무르지 말아야 할 이 네 곳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길갈의 전설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고향입니다. 역사적인 전설의 도시지만, 지금은 편한 곳이 되어 모든 이스라엘의 악을 묵과하고 있습니다.
(2) 벧엘의 금송아지 맘몬신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이 유다를 반역하여 북이스라엘을 세운 뒤 벧엘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집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부자였지만, 선지자의 사명 감당하는 것이 잠깐 편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며 생명만큼, 영생만큼 가치가 있기에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3) 여리고의 욕심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첫 번째 영적 전쟁의 장소였습니다. 여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곳으로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지는 놀라운 승리를 하게 해주셨습니다. 상아궁을 짓는 아합왕 때, 그 터에 은혜 대신 야망으로 채운 새로운 성을 재건합니다. 이 죄악을 알려 회개하게 하는 것이 엘리야가 했던 사역이며 이제 엘리사가 이어가야 할 사명임을 알려줍니다.
(4) 요단의 죽음에서 머무르면 안 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요단강 강가에 섰습니다. 결국은 요단도 주님이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건너야 할 요단강 건너편을 관장하고 있는 임금을 믿어야 죽음을 잘 건너갈 텐데 그게 안 믿어져 죽음이 두렵습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 신앙 생활하길 바라지만 죽을 것 같은 한계 상황을 맛보지 않고는 죽음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셋째, 여전한 방식으로 요단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벧엘과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은 하나님이 곧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실 것을 아느냐고 스승 엘리사에게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한 방식으로 엘리야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영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에 내일 일을 염려하면서 오늘 할 일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합니다. 계속해서 점점 더 무거운 사명을 확인했는데도 엘리야 곁을 떠나지 않고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비로소 세 번째 시험을 통과하고 6절에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라고 합니다. 엘리야 옆에 마지막 남은 자는 엘리사 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따라갈 때 주변에 있는 모두가 나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너무 다른 어떤 관계도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가 됩니다. 성격과 환경이 너무 다른 엘리야와 엘리사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니 사역을 이룬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는 예배해야 하는 관계, 인간과는 동반자로서의 관계, 자연과는 관리자로서의 관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누가 동반자이고 누가 관리자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주신 사명의 자리를 결코 지킬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명의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은 오직 믿음,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각자 세워주신 자리에서 날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루하루 여전한 방식으로 회개하며 자기 역할을 감당하면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 위로 건너게 될 줄 믿습니다.
한 목자님이 부모님 매장묘 이장 문제로 두 여동생과 심한 갈등 가운데 있었답니다. 이에 초원님은 '집안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세요. 동생들과 꼭 화목을 이루어야 해요. 동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마세요.'라고 권면했습니다. 동생들과 이장지로 가는 길에 공동체 권면을 되새기며 '우리 어렸을 때 소풍 가던 마음으로 함께 갈까?'라고 말했는데, 진짜 소풍 길같이 화기애애하게 의논하며 계약까지 잘 마쳤답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내가 다 부담할 테니 기타 비용만 부담하라고 하니까 막냇동생이 고맙다고 하고, 둘째 동생은 김양재 목사님 말씀이 참 좋다고 하며 두 동생이 오늘 너무 좋은 시간이었고, 오빠 너무 수고 많았다고 했답니다. 이렇듯 주변 사람까지 살리는 말씀 적용이 되어 기뻤답니다.
여러분, 사명 공동체를 통해 진짜 동료를 찾고,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의 엘리사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