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개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정근용 부목사
미 5:1~15
오늘 말씀 제목은 2절에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입니다. 말씀하시는 주어가 하나님이십니다. 네가 목적인 인생에서 내가 목적인 인생으로, 행복에서 거룩으로 나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반응하고 적용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첫째, 내 삶에 허락하신 작을지라도가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미가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시점에 남유다를 향한 심판과 구원의 말씀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무명의 작은 동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이는 이 땅에 오실 구원자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원함과 사뭇 상반돼 보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과 자기의 잘됨이 우선인 사람은 예수님의 길, 예수님의 방식에 대한 미움과 무시가 있어서 작을지라도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서서 우리를 먹이시며 평강이 되신다고 합니다. 주님은 군림하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시는 목자이기 때문에 올해 표어처럼 안심할 수 있습니다. 복장이 화려하면 그 사람의 내면이 잘 안 보입니다. 왕복을 입고 위대한 예루살렘에서 오셨다면 권세만 보이고 내게 주실 것만 바라게 되어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셔야만 했습니다. 1절에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를 무력한 이미지의 딸 군대여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3절에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해산하는 여인으로 표현했습니다.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전적 무능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으로 찾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예수님을 잘 믿으면 고난도 잘 극복하고, 죄도 안 짓고 거룩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답답하고 비참했습니다. 정신과에서는 어릴 때부터 겪은 외상 경험과 비행, 가난으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해리가 많다고 합니다. 한번은 친구랑 치고받고 싸웠는데 저만 나무라고 상대 부모에게 사과하시는 아버지가 무력하고 무능해 보여 열등감과 수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불쌍한 부모님을 도와달라고 기도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십 대 때 십 년 동안 교회를 떠나 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가장 거절감을 느꼈던 때는 하나님, 죄 좀 짓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목사지만 택자인지 의심이 들고 죄책감으로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설교 팔복산의 배부름에서 신앙의 목표는 내가 의인이 되고, 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하고 진정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응답 없음은 하나님의 옳으심이었습니다. 제 기도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아니라 제 자아의 완벽한 성취와 실현이 목적이었음을 직면하였습니다. 교만과 욕심, 자기애와 의로움, 자기 중심성이 얼마나 가득한지 깨달으며 지상 최고의 회개의 감정을 누린 한 주였습니다.
둘째, 나를 많은 백성 가운데 두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참 목자이자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시는 그 사랑으로 남은 자를 끝내 찾아내십니다. 7-8절에서 야곱의 남은 자가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 있다고 하십니다. 이는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복음은 이슬과 단비처럼 차별 없이 영원한 생명을 주지만, 동시에 양 떼들과 짐승들 앞의 젊은 사자처럼 같이 복음에 대항하는 모든 세속적인 가치관, 육적 습성을 밟고 찢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구원과 심판이 함께 있습니다. 마치 오르기 싫은 팔복산에 오를 때는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지만, 동시에 초막 짓고 머물고 싶은 기복산에서는 얼른 내려가라고 호통을 쳐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달 네팔 아웃리치를 다녀왔습니다. 사전모임 때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그날의 말씀으로 나누며 준비했습니다. 아웃리치이지만 동시에 복음이 우리 안에 임하는 인리치를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은혜로 준비하고 도착한 곳은 인신 제사를 하고 이를 묵인해주는 경찰과 종교로 음란을 정당화하며 죄 가운데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우상숭배를 경고하는 미가서의 시대적 배경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도 겨자씨 같은 믿음을 품은 남은 자들이 있었고 하나님이 이미 값을 치르고 천국을 만들어가고 계심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줄로 매어주신 자리에서 이슬과 단비의 역할로 때론 젊은 사자의 찢는 역할로 구원과 심판의 말씀을 균형 있게 잘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 이기주의와 가족 우상 등 유대인과 같은 생각과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복음으로 가지치기 돼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처럼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삶이기에 나를 많은 백성 사이에 두어 맡기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이루실 심판이 반가워야 합니다.
10절에 그날에 이르러는 카이로스의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내게 이루실 심판의 일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시 최고 위력의 무기인 병거와 군마를 부수고 성을 무너뜨린다고 하십니다. 내가 의지하는 집, 차, 보험, 스펙, 학식, 외모, 인간관계 등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복술과 점쟁이도 끊어내고 우상과 주상도 멸절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욕심 때문에 장차 올 일을 알고 싶어 하지만, 이는 말씀으로 양육 받으며 구속사 가치관을 배우면 잘 통과할 수 있습니다.
저는 15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진노와 분노로 대하시는 것이 점점 반가워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제가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애통해지고, 분수령적인 회개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제 마음은 하나님, 눈감아주세요. 죄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데 좀 평안하게 해주세요. 사고는 쳤지만, 손해 보지 않게 해주세요. 들키지 않게 해주세요 였습니다. 그런데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고 인생의 목적이 변해가며 제 죄에 대해 무섭게 진노해달라는 기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는 좋은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명하십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어 내가 주인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보험과 옵션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