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에서 내려갑시다]
정지훈 부목사
마17:1-6
지난주 팔복산의 말씀을 통해서 야생마와 같은 우리가 십자가로 훈련되어 내 생각을 누르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바로 온유한 자이고 그런 자가 누릴 복이 영원한 땅의 기업을 받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은혜를 받고 천국의 가치관, 팔복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기 때문에 때마다 기복의 가치관에 도전받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팔복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변화산이었다고 생각되신다면 다시 팔복산에 오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변화산에서 내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어봤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사흘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일이 있고 난 엿새 후에로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을 감당 못 할까봐 주님은 엿새 동안 기다려주십니다. 이런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은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저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편안한 것만 찾았습니다. 목장의 보살핌은 좋지만, 죄를 지적받으면 인정이 되지 않아 괴로웠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부활 이야기를 듣고 근심하던 제자가 저입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엿새 동안 기다려 주시다가 높은 산에 올라갔던 사건이 공황장애 사건입니다. 힘든 공황장애 사건을 통해 그동안 지적받았지만, 소화가 되지 않던 말씀들이 소화되면서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옳으심이 인정되었습니다.
둘째,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실 그때 율법의 대표인 모세,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을 증거해 줍니다. 그러나 변형된 영광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만 십자가 지실 것을 이야기하니까 제자들은 졸았습니다. 졸다가 일어난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가 나눈 십자가 이야기는 못 듣고 그냥 그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양육을 받고 높은 산에 오르는 훈련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졸고 있고 분별을 못 합니다. 그래서 그때 홀연히 빛나는 구름이 제자들을 덮는 사건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어두운 구름이 아니라 빛난 구름이라고 하십니다. 고난과 훈련의 시간 자체는 어둠일 수 있지만 아무리 어두워도 남에게 빛을 주는 제자의 인생이 될 때 그것이 바로 빛나는 구름이 되는 사건입니다.
저는 양육을 받으며 돈에 대한 허세가 있다는 지적을 들었음에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곡도 쓰고 찬양도 만들며 주를 위하여, 사역을 위해서 물질을 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필요 이상의 빚을 지면서까지 장비를 구입하고 돈을 막 썼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분별하지 못하고 베드로처럼 '위하여 위하여'를 부르짖다가 결국은 이것이 공동체에 드러나게 하셨고, 그로 인해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이는 두 번의 치리를 받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치리가 괴로웠지만 후에 죄가 깨달아져 울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저 때문에 애통해하시며 '하나님께 내가 치리를 받는 것 같다.'고 고통스러워하시는 담임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죄에 대한 감각이 없는 나병환자 같은 자인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오직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영광 가운데 있다가 갑자기 구름이 덮이고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자들에게는 엎드리고 두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여전히 못 깨닫고 분별도 못 하고 구원과 상관없는 열심만 많은 제자에게 손을 대시고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학벌과 스펙과 자존심과 돈과 세상의 명예와 지위를 사랑하고 기뻐하기에 그것을 갖지 못해서 분이 나고 가지면 잃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엎드러질 때,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 배우는 것이 있고, 쉬운 멍에와 가벼운 짐을 지며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인생이 됩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 보이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변화산 양육의 결론입니다.
베드로에게 이 변화산의 사건은 어쩌면 흑역사일 겁니다. 그렇게 양육을 받았음에도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고 주님이 자신을 바라봐 주셨을 때 통곡하며 울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고 주님이 기다려 주시고 사랑으로 양육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성령의 우리들 행전을 써 내려가고 계십니까?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사명의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명을 발견할 때 우리는 기쁨으로 변화산에서 내려올 수 있고 팔복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첫 주에 청년 큐티 페스티벌이 3년 만에 현장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은 자신에게 천만 원을 주면 큐페에 가겠다고 했고, 부모님은 구원의 값이라면 치르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큐페때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서 천만 원을 받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억지로 와도 은혜를 받으면 변하기 때문에 정말 수련회는 목숨을 걸고 보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들교회도 20주년이 되어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팔복 공동체를 이어받아야 할 청년들이 앞으로 거침없이 성령의 우리들 청년 행전을 잘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변화산에서 양육 잘 받고 이제는 사명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내려와서 팔복산에 다시 올라갈 수 있길 바랍니다. 어떻게 사는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사명의 인생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