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담대한 마음]
행 28:11~15
구원을 이루어 가는 문제에 있어서 시기마다 종류가 다른 두려움이 몰려오기에 우리는 때마다 주시는 담대한 마음을 얻고 가야 합니다. 담대한 마음은 구원받고 가는 인생에서 형제와 함께 천국 갈 때까지 이유 달지 않고 겸손하게 살도록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의 담대한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떠나는 인생입니다.
바울은 멜리데에서 석 달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보블리오의 대접을 받으며 쉬고 정착할 수 있었지만,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모든 일행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배의 뱃머리에는 당시 뱃사람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디오스구로가 달려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배는 온전하게 멜리데에 정박하여 바울을 태울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탔으니까 괜찮겠지가 아니라 바울이 탔기 때문에 배가 깨어졌고, 그 깨어짐 때문에 모두가 구조되고 구원되었습니다. 그래서 좋고 나쁨을 우리 생각으로 정하면 안 됩니다. 구원으로 생각하면 불안함이 아닌 담대한 마음이 생깁니다. 로마로 향하는 그 배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뜻의 물고기 표시인 익투스로 뱃머리 장식을 걸고 가면 좋겠지만, 본질을 형식이 따라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아난 경험을 한 바울 일행은 우상숭배의 배를 타고 있지만, 우상숭배를 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항해를 시작합니다. 섬기던 우상이 무너지는 사건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상숭배의 죄악을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담대함은 늘 떠나야 합니다.
둘째, 남풍이 일어날 때 떠나야 합니다.
로마가 목적인 바울은 수라구사에서 사흘을 지냅니다. 왜냐하면, 남풍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씩 인도받고 남풍을 기다리며 가다 보니 이탈리아 땅 레기온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보디올까지는 340km 정도로 5일 이상은 걸리지만, 남풍 덕분에 단 이틀 만에 도착했습니다. 남풍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자연풍입니다. 그래서 남풍이 불 때를 기다리다 출발하면 누구도 갈 수 없는 거리를 이렇게 순풍에 돛단 것처럼 가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언제든지 억지로 가 아니라 남풍이 불듯 자연스럽게 일하십니다.
저는 날마다 로마에 도착하는 마음으로 전도하고 가정을 살리며 13년 동안 수라구사같은 우리 집에서 큐티 모임을 열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큐티의 남풍이 불어 교단을 초월하여 목사님들이 이사가 돼주시는 전폭적인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2000년 7월 17일 큐티선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또한, 레기온에서 보디올을 이틀 만에 간 것처럼 3년 만에 우리들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주님은 늘 큐티 말씀대로 움직이며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배에 탄 사람은 더는 바울과 죄수들이 아닙니다. 3개월 동안 바울에게 말씀을 듣고 살아난 훈련받은 복음특공대 276명이 짐승의 권세, 용의 권세, 세상의 권세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준비가 되었기에 남풍을 불게 하셔서 속히 로마로 보내십니다.
셋째, 형제들이 맞으러 올 때 이와 같이 로마로 가야 주십니다.
점점 목적지로 다가가고 있지만, 그렇게도 가고 싶은 로마에는 결국 참수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배의 종착 항구인 보디올에서 로마까지 220km 정도 되니 육로를 통해 곧장 갈 수 있지만,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고 그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후송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에게 있습니다.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있어도, 아무리 구원을 위한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내 위에 세우신 질서에게 묻고 가야함을 마지막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그때그때 환경과 질서에 순종하며 내게 주신 말씀으로 하루하루 물으며 인도함 받고 가는 것이 로마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담대함의 비결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도 말씀과 문서를 보내며 가는 것 또한 이와 같이 로마로 향하는 길입니다. 주 안에서 형제들을 만나 서로 죄인임을 확인하는 만남은 너무 기쁨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과 일주일 보낸 것이 로마로 가는 담대함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맞으러로 번역된 헬라어 아판테시스는 높은 사람, 귀한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환영하는 마중을 의미하는데, 특히 개선장군을 맞으러 갈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초라하고 병든 늙은이 바울이 로마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으로 보고 계신 것입니다. 바울처럼 죄인의 신분으로 부와 능력도 없는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말씀 하나 붙들고 오늘 내 자리를 살아내며 천국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고의 개선장군으로 맞이해주실 줄 믿습니다. 로마에서 압비오 광장까지 이틀 길인데 관심만 있다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로마 성도들의 진실한 섬김이 바울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이렇듯 목장의 밥 한 끼가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을 움직이고, 또 한 주를 살 수 있는, 평생이 바뀔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주는 최고의 응원이 됩니다.
일상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어주신 목자님의 고백입니다. 저는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14년 동안 직장을 다니며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진급이 되지 않는 것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아내가 잘해주어도 남자로서 늘 불만이 많고, 심지어 외가에서 사랑받는 아들에게 질투하는 열등감을 가진 아비라고 고백하셨습니다. 또한, 불붙기 시작한 목장 예배의 불을 코로나 핑계로 꺼뜨리려 했던 존재가 자신이며 늘 내 환경을 먼저 생각한다고 나누어주셨습니다.이렇게 치부를 나누고 들어주는 죄인들의 나눔이 자신과 옆 사람에게 담대함을 주는 비결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는 우리가 담대한 이유는 환난 많은 세상을 이미 주님이 이기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삶에서 내 자리 잘 지키며 남풍을 주시는 주님을 붙잡고 죄인들의 공동체에서 서로 수치를 나누다 보면 성령의 담대한 마음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형제가 맞이해 줌으로 개선장군이 되고, 우리는 이와 같이 함께 로마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특공대가 되어 우리들의 행전을 써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