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고침]
행 28:7~10
지난주 우리는 성령의 공의로 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지만, 아직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고침을 받아야 하며, 결국 우리가 고침 받는 것은 복음 전파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고침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바울이 맹독성의 독사에게 물렸는데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고 멜리데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는 아픈 아버지를 고칠 목적을 가지고 바울 일행을 영접합니다. 그는 대단한 부자이고 권세도 있었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보블리오의 영접은 원어로 아나데코마이로 높은 사람을 잘 모시는 영접이란 의미인데,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더 높은 사람을 모시듯이 바울을 영접한 것입니다. 바울이 독사에게 물려도 상함이 없고, 가해자, 살인자 의식을 가지고 독사에 물리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니 적용이 소문이 나서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고 그가 변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바울을 죽도록 놓아두고 살인자라고 했으니 이렇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쉽습니다. 반대로 내가 가해자면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인생은 별 인생이 없습니다. 이런 원리를 날마다 성경을 통해서 어렸을 때부터 들어야 합니다. 성경이 인간론이고 경영학 교과서이며 상담학 교과서이기에 어떤 것이든 다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 전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열매 맺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높은 사람이 변화되면 크게 쓰임 받는다고 하였는데 보블리오는 후에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아픔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할 때 주십니다.
성령의 공의는 결국 고침으로 연결되어야 공의가 무서운 것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보블리오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었지만 교양 때문에 바울 일행을 융숭하게 대접한 다음에 부친의 병을 오픈합니다. 바울이 혹시 이를 미리 알았더라도보블리오가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은 굉장히 무서운 풍토병이었는데, 그에게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바울이 독사에게 물려서 살아났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바울은 멜리데에서 이미 상처를 입었지만그들의 영접에 기꺼이 임하며,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복음을 전합니다. 누가는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에게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라고 했는데, 안수는 그에게 두 손을 얹어 치유했다는 뜻으로 그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는 고백의 의미입니다. 안수하니까 병이 나았습니다. 바울을 가장 힘들게 한 보블리오에게 바울은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습니다.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목장에서 우리를 가르쳐도 힘들고 위로해주지 않아도 힘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존재 자체가 가해자라는 생각을 하며 잘 듣고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독사에 물려 있습니다. 날 때부터 죄인인 것이 그 증거입니다.
셋째, 공동체와 함께 사명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냥 상처만 낫게 해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사명으로 이어져야 합니다.가장 높은 보블리오 한 사람이 고침을 받자 다른 병든 사람들이 다 바울에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 중에서 모두 바울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을 떠나 바울을 보러 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침 받은 여럿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장 예배의 축복이 이렇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받은 주님의 치료는 언제나 우리를 여럿으로 공동체로 부르십니다. 고치다의 원어는 바로 테라페오인데 이것이 테라피의 어원이며, 고치다는 섬기다, 돌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뱀을 집고,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는 표적은 지금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내가 이미 치유를 한번 받았다면 그때부터 진정한 표적은 '당신이 옳아요. 내가 살인자예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새 방언입니다. 믿는 자에게 따르는 이 새 방언을 잘 쓰면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표적이 따라다니게 될 줄 믿습니다. 나에게 허락한 이 순간에, 나에게 붙여준 한 사람을 고치려는 이 마음, 구원을 향한 매 순간이 결국 로마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로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로마로 가는 바울 일행의 사명에 동참합니다.
보블리오와 원주민은 후한 예로 바울 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파선되어 다 버렸던 물품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은 이때 회심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 한 번 고쳐주었다고 날마다 고침만 받으러 가면 언제 성숙하고 언제 거룩해지겠습니까? 나는 수준이 낮지만, 복음은 전파되어야 하기에 뱀의 독에서 표적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야 하고, 성장해가야 하며, 거룩함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바울처럼 광풍과 독사와 시기와 질투와 모함과 매 맞음을 당할 때 해를 받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고침의 열매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우리들교회 성도이신 김재남 집사님은 어느 날친구를 전도하고 목장 예배를 드리러가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소천 하셨습니다. 이십 년간 교회에 안 나오는 두 아들을 위해늘 기도하시고 정말 이름도 빛도 없이 홀로 섬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결같이 섬기시다가 지난달 한마디 유언도 못 하시고 가셨는데, 개척 때부터 아들들과 며느리, 두 남동생, 친정엄마의 구원을 위해 한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같은 기도 제목을 올리신 것이 유언이 되셨습니다. 두 아들이 어머니 기도를 평생 잊지 않고 성령의 고침을 받아 신앙을 잘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큐티를 하면 오늘 하루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임을 집사님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새 방언의 표적이 임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모든 가정과 나라와 교회에 성령의 고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