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피난처]
사도행전28:1-2
영국 국교회의 심한 박해를 피해서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무 준비없이 출발한 102명이 미국 플리머스항에 도착한 후, 인디언들이 농사를 가르쳐주어 굶어 죽지 않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해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여러 곡식들로 축제를 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이라고 합니다. 바울도 유대인의 박해를 피해서 죄수의 몸으로 항해를 하다가 원주민이자 토인인 메리데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어 그곳에 복음을 전했고 결국 유럽에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피난처를 찾아서 떠났지만 진정한 피난처는 이 세상에 없기에 성령의 피난처를 찾으셔야 합니다.
첫째, 성령의 피난처는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구조된 후에 알고 보니까 그곳은 멜리데섬(현재 몰타)으로 피난처를 뜻하며, 현재 전 세계에서 은퇴 후에 가장 살기 좋은 곳 중 하나로서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곳으로 바울 및 그의 일행들을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피난처였습니다. 계획을 잘 세우고 출발했지만 14일이나 표류를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끊고 버리고 깨어져서 이리저리 쫓기다가 구조되고 보니까 그곳이 피난처였습니다. 이렇듯 건강한 공동체는 인생의 방황이 끝나게 해 줍니다. 지금 멜리데가 세계 최고의 휴양지가 된 것처럼 우리도 후손을 위해 지금은 광풍이라도 세계 최고의 공동체를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멜리데에 도착하기 전 바울은 배는 손상이 있지만 생명은 손상이 없다고 미리 얘기했습니다(27장 22절). 그래서 미리 듣는 말씀이 참 중요합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의 말씀이 딱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서 있었기에 풍랑 중에도 음성을 들었고, 말씀을 증거했고, 한 명도 잃지 않고 살려냈습니다. 표류하는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조하시고 상륙하게 하십니다. 어떤 광풍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없는 것이 최고의 광풍입니다. 우리가 있으니까 이 배에서 다 살아났습니다. 동창, 고향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성령 안에서 만난 우리가 있어야 진짜 구조를 받습니다. 그 우리가 있다면 그곳이 바로 멜리데, 피난처가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 성령의 피난처는 특별한 동정을 알게 하십니다.
구조됐으니까 짠하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광풍 속에 도착한 피난처 멜리데가 아직 겨울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피난처 되신 예수께 내가 피했지만, 아직 겨울입니다. 내 마음도 얼어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다 얼어 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 불을 피워야 합니다. 이렇듯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미움, 분노, 상처, 실패로 얼어 있는 마음이 풀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바울 일행은 미개인, 야만인이라고 무시하던 원주민들로부터 특별한 동정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타고 있던 배는 큰 파도에 부서졌고 널조각에 의지해 헤엄쳐 상륙했습니다. 소낙비가 쏟아지면서 추위가 몰려왔고, 지난 열흘 이상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뭔가 지병이 있었던 노인 바울이 그 차가운 바다를 헤엄쳐 왔음에도 설상가상으로 겨울 소낙비가 쏟아지면서 추위가 기승을 부리니 그 노쇠하고 병약한 바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당장 무어라도 해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기에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으로 모닥불을 피워 특별하게 대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게 아니라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정말 무시할 수밖에 없는 야만인, 이방인 앞에서 나의 연약함과 수치를 드러낼 때 특별한 그들의 동정이 내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줍니다. 세상의 광풍을 거치며 피난처이신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로 인도된 분들을 우리는 원주민처럼 낮은 마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특별한 동정을 하여 그들의 차가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불을 피워줘야 하겠습니다. 이 불은 때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얼굴로 하는 인사, 따뜻한 주차 안내, 따뜻한 밥 한 끼가 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불을 지펴 그 영혼을 녹이는 것이겠죠. 그러기 위해서 기도의 불로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합하여 불 같은 성령의 사랑으로 한 영혼이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이 성령의 피난처인 줄 믿습니다. 유대 귀족들은 바울을 끝까지 대적했지만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고 구해주려 한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고 로마의 백부장이고,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며 돕는 사람들은 그렇게 무시하던 이방인 원주민인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특별한 동정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진짜 죄가 안 보이는 사람은 인생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생활 전반에서 따뜻한 언어로 불을 피워야 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아야 따뜻한 말이 나옵니다.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위해 우리는 회개하고 가야 합니다.
셋째, 다 영접을 합니다.
목장에서 따뜻한 불을 피우고 특별한 동정으로 영접하면 영적으로도 주님을 영접하기가 아주 쉬워집니다. 원주민들의 영접은 특별해서 처음 보는 276명을 마치 자기편인 듯 자기들의 일부인 듯 대접했는데, 이는 마치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힘에 의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 죄인들을 그냥 자기편인 듯 받아들이시는 것과 같은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너희 속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소망에 관한 이유가 너무나 뚜렷해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습니다. 제 남편이 구원받고 갔다면 저는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 때문에 믿음과 성품을 좀 더 확실히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성품이 좋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못 고칠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하면 그것 자체가 응답인 줄 믿습니다. 우리 자체가 하나님이 상급이 되셔야 사랑하는 식구들이 피난처 되시는 주님 곁으로 돌아올 줄 믿습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 피난처로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피난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