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구조]
행 27:38~44
여러분, 한 번에 가장 많은 사람을 구출한 배가 어떤 배인지 아세요? 6.25 전쟁 중 흥남 철수작전에서 14,000명의 시민을 구조한 미국 해군의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라고 합니다.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는 그토록 많은 사람을 태우고도 배가 침몰하지 않고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1950년 크리스마스 날 목적지 거제도에 도착한 것은 기적이었으며 하나님이 직접 그 배의 키를 잡고 계신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습니다. 한 사람의 결단이 정말 너무 중요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할 때 영혼의 구조를 받아야 하는데, 사도행전이 끝나기 전에 성령을 받으셔서 영적 구조를 받으시길 바라며, 오늘은 성령의 구조에 대해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첫째, 경사진 해안이 눈에 띄어야 합니다.
배부르게 먹고 밀을 버려 배를 가볍게 했다고 합니다(38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믿음의 지체들과의 식사는 금보다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지가 가까워질수록 암초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항해의 목적인 밀을 바다에 버립니다. 여러분,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밀을 버리고 나니 드디어 날이 밝아 보이지 않던 경사진 해안이 눈에 띕니다. 경사진 해안이란 항구로서 기능이 없는, 배를 정박시킬 수 없는 항만이란 뜻입니다. 정말 간신히 가는 성도의 항해입니다. 지난 광풍 후 날이 새었을 때 축사함으로 예배가 회복되어 삶이 보이고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광풍 같던 고난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 형제, 자매 육신의 질병, 나의 죄악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망하고 아프고 버리면서 광풍을 호되게 겪었더니, 식구들의 굴곡진 경사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보며 나도 경사진 인생이고 누구도 나에게 정박할 수 없었겠구나!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했습니다. 전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의논하다는 몇 번이고 심사숙고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묻고 또 묻고 THINK 해야 합니다. 의논이 끝나고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갑니다. 내 눈에 띄는 한 영혼에 정박하고자 마지막 닻을 끊고 들어가 키를 잡고 바람을 받아 들어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 배가 좌초되어도 그 사람의 고난과 아픔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구조입니다.
둘째, 두 물이 만나 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심사숙고하여 항해하는데, 하필 지나가는 곳이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입니다. 이는 육지로부터 흘러내리는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을 묘사한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물 밑에 모래언덕이 쌓이면서 모래톱에 이물, 즉 배 앞머리가 딱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고 떠났지만 결국 암초에 걸린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구조는 전혀 다른 두 물, 즉 내 생각과 너의 생각이 만나 서로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거룩을 목적으로 두고 가야 구조가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두 물이 충돌하는 사건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그 분이 피조물에 들어오셔서 배 앞머리 이물을 단단히 고정한 것처럼, 자기 손과 발을 십자가에 단단히 고정하고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고물이 깨어진 것같이 육체가 깨어지셨습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알렉산드리아 호가 깨지지 않고 무사히 항만에 상륙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알렉산드리아 호는 전설의 배로 떠받들어졌을 것이고, 그러면 결국 구조된 276명은 성령의 구조가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호의 구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했던 말씀 때문에 배가 부서져 한 섬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충돌하여 깨어지는 것이 성령의 구조입니다. 바울은 두 물이 합해진 곳에 배를 걸었다고 능동태를 쓰고 있습니다. 힘든 곳에 정박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태우고 가는 배, 내가 의지하고 우상 삼은 배가 철저히 깨어져야 합니다.
셋째, 널조각에 의지하여 구조됩니다.
로마법상 죄수가 도망을 가면 그 죄수를 지키는 군인이 사형당합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자신이 살려고 죄수를 죽이고자 하는데 백부장은 바울을 구원하고자 이를 막습니다. 백부장의 관심은 바울을 구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바울 한 사람 구원하기 위해 모든 죄수를 살렸습니다. 백부장이 한 영혼에 관심이 있어서 구원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바울이 특별히 잘나고 남다른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바울에게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주셨고 바울이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는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구조된 것입니다. 저 또한 가정 중수와 말씀 묵상이라는 사명 하나 때문에 이렇게 인도해 가십니다. 구원의 은혜를 알고 성령의 구조를 경험한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그 한 사람이라는 사명 의식입니다. 본문에 널조각은 배의 깨어진 파편을 말하는데 그 깨어진 파편에 의지하여 여러 사람이 상륙하여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구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장의 경험, 군인들의 무력, 상인들의 돈, 로마에 납품하려 했던 곡물은 오히려 배를 가라앉게 만들고 버려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구조에 필요한 것은 오히려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깨어지고 박살 난 고난과 아픔, 실패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고 생각한 죄악들입니다. 구조 되니라는 수동태인데, 구원에 있어서 내 능력은 없습니다. 성령의 구조는 내가 아니라 너를 구조할 때 서로 구조되는 줄 믿습니다.
공동체 나눔은 깨어진 널조각 하나 붙잡고 구조되신 부목자님의 나눔입니다. 외교관과 대사를 역임하셨던 이분은 어느 날 한 여성이 과거에 원치 않는 관계를 했다며 부목자님을 고발했습니다. 한 번의 고발로 30여 년의 공직 생활, 명예, 무엇보다도 꿈과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혼을 원했던 아내가 먼저 공동체에서 말씀을 듣고 가정을 중수하기로 결단하였기에, 아내를 통해 공동체에 오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이 집사님께 꼭 맞는 광풍으로 성령의 구조가 되셨습니다.
여러분, 경사진 해안이 눈에 띄어서 부모, 형제, 자녀의 경사짐이 나의 것임을 알고, 나를 구원하는 깨어진 널조각을 통해 다른 사람까지 구원하는 성령의 구조의 삶을 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