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기다림]
행 27:27~37
지난주 우리는 이태원 참사라는 너무나 기막힌 아픔을 겪었습니다. 들리는 소식에 눈물만 날 뿐, 아픔과 어둠은 여전히 내 주변을 뒤덮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한 섬에 반드시 걸릴 것은 알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함께 아파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기다림에 대해 함께 말씀을 듣겠습니다.
첫째, 이리저리 쫓겨 가는 것입니다.
유라굴로 광풍의 기세는 칠흑 같은 어둠만 계속되는 죽음의 광풍이었습니다. 27절에 자정은 깊은 한밤중이라는 뜻인데, 솟구치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보내는 기다림의 시간은 대화도 못 하고, 밥도 못 먹고, 침 삼킬 틈도 없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구원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죽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입니다. 노를 저를 수도 닻을 내릴 수도, 방향도 알 수 없는 시간을 통해서 철저히 내 자아가 죽어야 내가 죄인이다. 고백하게 됩니다. 내 등 바로 뒤에서 휘몰아치는 광풍 속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열나흘이 성령의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내 죄를 못 보기에, 나의 누추함을 알게 하기 위해서 광풍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 광풍에서 오래 참아야 합니다. 참는 것은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그 광풍 사태의 상황을 품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어야 내 죄가 보이고, 내 죄가 보여야 사건에서 내가 나를 예수로 낳고, 또 다른 영적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영적 자녀를 낳기까지 기다리십니다.
둘째, 묻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나흘째 되도록 광풍 가운데 무려 800km를 휩쓸려 아드리아 바다까지 왔습니다(27절).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한밤중 같은데, 그 한밤중에 오히려 육지가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아드리아 바다는 바로 이탈리아 남부 앞바다, 즉 로마 앞바다였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리저리 쫓겨 다녔습니다. 하지만 바울 옆에서 계속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니, 쫓겨만 다닌 줄 알았는데 목적지가 코앞에 있었습니다. 노련한 사공들은 바람에 느껴지는 습도와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의 냄새를 통해서 드디어 육지가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물속 깊이를 재 보았습니다(28절). 이때 배에 탄 사람들은 한 섬에 걸리리라는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듣든 안 듣든 말씀을 전해 놓으니, 사건이 왔을 때 기억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밤중을 지나고 구원의 소식이 들리는 바로 이 중요한 순간, 급하게 가면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먼저 측량해야 합니다. 사공들은 암초를 피하고자 닻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합니다. 고대한다의 사전적인 뜻은 간절히 기다린다이고 원어는 기도하다 입니다. 즉, 무언가 된 것 같은 이때, 묻고 기도해야 합니다. 육지가 보인다고, 구원이 코앞에 왔다고 서두르면 안 됩니다. 기다림의 끝이 온 것 같은 이때는 더더욱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는 것은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재고, 네 개의 닻을 내리고, 이게 맞는지 돌다리를 두드리듯 묻고 기도하는 것이 성령의 기다림입니다.
셋째, 끊어 떼어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죄성이 또 나타납니다. 노련한 사공들이 자신들만 살기 위해서 닻을 내리는 체하면서 슬그머니 거룻배를 바다에 내렸습니다(30절). 여기서 닻을 내리는 체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닻을 내리면서, 즉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하면서, 자기만 살길을 찾았습니다. 구원이 아닌 모든 일은 100% 이기적이고 나도 속고 남도 속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속지 않았고, 아주 강력한 어조로 너희만 살자고 한다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31절). 여기서 바울은 우리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척하며, 나만 살고자 떠나간 너도, 남아있는 나도, 모두가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의 강력한 경고를 들은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립니다(32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끊어, 떼어, 그리고 버린다. 3가지 동사를 강조해서 연결했다는 것입니다. 즉, 사공들이 타고 가려는 것을 군인들이 칼로 끊고 그 줄을 또 떼어냈습니다. 그리고 출렁이는 파도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위한 적용입니다. 내가 죽을 것 같은 광풍이 불어도 여러 가지 합리화를 시키면서 나만 살고자 떠나서는 안 됩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 하나님께서 허락한 이 가정, 이 배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을 지나고 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끊고, 떼어내고, 버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기다림 속에 할 일입니다.
넷째, 축사하고 떼어먹는 예배가 비결입니다.
이 배에 탄 사람의 수 276명이 처음 나옵니다(37절). 한 사람의 적용으로 내 가정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끊고 떼어내고 버리는 적용으로 276명 전원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 속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먹지 못하고 기다리고 기다렸으니 이제는 먹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먼저 본을 보이고 먹었으니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35절). 즉 날이 밝기 전에 배 안에서 성찬식의 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밖에는 여전히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고, 날이 밝지 않아 어두웠습니다. 광풍과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내일은 좋아질 것이라며 안일하게 있으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 적극적인 기다림의 끝에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게 성령의 기다림입니다. 바울, 누가, 그리고 아리스다고만 우리였던 그 우리 속에 주님이 축사하시고 우리가 기도함으로 진정한 우리 276명의 열매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죄수였지만 2천 년 역사에 바울과 같이 배에 탄 구원받은 사람으로 지금 기억되고 있습니다.
공동체 고백은 너무 가슴 아픈 기도 제목입니다. 20대 딸은 두 번의 임신과 미혼모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으로 마약에 손을 대, 현재는 신고가 들어가 구속을 면하고자 반성문을 쓰고 외래 진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오픈하게 된 계기는 마약이 천국이 아니라 지옥같이 너무 끔찍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큰 광풍을 지나고 있지만 성령의 기다림으로 반드시 한 섬에 걸려서 기적 같은 간증을 하길 바랍니다.
끝으로, 광풍의 환경 가운데 성령의 기다림을 경험하는 한 주 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