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허락하신 광풍은 성령의 광풍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성령의 광풍이 왜 오는지 말씀을 듣겠습니다.
첫째, 생명과 재물에 타격을 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항해는 5월~9월이 안전한 기간이고 11월~2월까지는 전면 금지되어있었습니다. 지금 항해하는 것이 위태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상식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임을 알고 가지 말자고 간절히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암에 걸리고 생명이 오늘내일할 때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말보다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명과 생사 화복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십자가를 통과한 자이고 타이밍을 아는 자입니다. 바울의 신분은 죄수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생명에 관한 것은 바울이 그 어떤 사람보다도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는 돈을 벌어야 하기에 무리해서 항해를 결정하여 재물에 타격을 입히고 생명도 죽음의 위기로 다 몰아넣었습니다. 그들의 판단기준은 오직 돈이었으며,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판단기준은 오직 돈입니다. 여기서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게다가 백부장 율리오가 내린 인본적인 판단에도 이유가 있었는데, 미항이 겨울을 지내기 불편했기에 모든 사람이 미항을 떠나 뵈닉스에 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는 곳에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다 따라다니니까 불편을 못 참습니다. 사람이 100% 죄인이라 배에 탄 모두가 뵈닉스로 가자고 했습니다.
둘째, 자기 뜻을 이룬 줄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미항을 떠납니다. 그런데 순하게 남풍까지 불어줍니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늘어뜨려 두었던 닻마저 감아올렸습니다. 목장에서 아무리 권하고 말하고 반대해도 뭔가 일이 되니까 공동체와 목장에 깊이 뿌리내렸던 닻을 도로 감아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 이루어진 것처럼 신나게 전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예기치 못한 광풍이 배에 불어 닥칩니다. 광풍의 사전적 의미는 봄볕이 따사로운 맑은 날씨에 부는 바람이고 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풍랑이 일어난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의 욕심과 거짓말로 지금 광풍이 왔습니다. 멈추려 해도 이미 닻을 걷어 올렸기 때문에 바로 멈출 수가 없고 이미 속도가 너무 붙어서 닻을 내렸다가는 배가 뒤집히게 생겼습니다. 공동체에 내려놓았던 이 닻을 감아올리면 안 됩니다. 잘 붙어있어야 합니다. 내가 목장을 떠나서 닻을 감아올리고 남풍이 불어 가다 보면 속도가 붙어서 말릴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뜻을 좇아가던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 광풍으로 쫓겨 가게 하시며 구원으로 방향을 바꾸어 주시는데 이것이 성령의 광풍입니다. 이는 아직도 내 속에 믿음이 없어 여전히 그레데를 의지하기 때문에 유라굴로 광풍을 축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내 손으로 내버리게 하십니다.
바다 위 풍랑에 그대로 노출되어 극치에 해당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선원들은 항복하지 않습니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아서 버리지 못하는데, 그 끝에는 돈이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부적절한 관계, 옳지 못한 것을 버리는 것이 성령의 광풍의 결론입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그것은 손해를 보더라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지 못한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결국 애를 쓰다가 드디어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버립니다. 그런데 이 버리는 것을 성경은 그들의 손으로 내버린다고 합니다. 내 손과 발이 가서 죄를 끊어 내야 합니다. 지금 내게 닥친 광풍은 성령이 임하기 위한 축복입니다. 지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구원의 여망마저 다 없어질 때, 해 달 별이 다 떨어져야 그때 비로소 우리 속에 내가 보니라고 권한 바울의 말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그레데를 더 의지한 것 때문에 하나님은 광풍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별 인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어느 부목자님의 간증입니다. 온화하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부모님 밑에서 행복하게 자라며 꿈꿨던 조종사와 독일 유학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공군에서 공군 1호기 대통령 전용기 조종사로 근무하며 세 분의 대통령을 모시기도 했습니다. 무난하게 군 생활을 했고, 독일 유학을 2년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학 후 2년이 지난 뒤 전처는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알고 지냈던 동창 남자와 연락을 취해오며 가끔 만났음이 나중에 드러났습니다. 평생 군에서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며 지내왔던 모든 것은 너무 쉽게 끝이 났습니다. 일사천리로 비행중지, 대대장 발령 취소, 일주일 뒤에는 타 부대 전속으로 저를 쫓아내는 일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부산에서 따로 지내던 두 아들이 전처의 도주로 버려졌다는 연락이 오게 된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매듭을 풀듯 사건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비행은 더 이상 못했지만, 부대에 남아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혼 과정을 밟으면서 많은 것이 드러나 다행히 모든 판결이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었고 늦은 나이에 민간 항공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환란 가운데 청주 여자 교도소에 가서 간증하는 은혜를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떠날 수 없음을 알기에 항상 깨어 기도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부목자님이 당한 이 억울한 일들이 유라굴로 광풍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너무 좋은 것이 생겼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통해 앞으로 전할 말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유라굴로 광풍을 허락하시지만, 같이 동행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여전한 방식의 닻 목장에 가서 지질한 모습과 교만함을 보며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가 만난 광풍이 성령의 광풍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