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권한]
행 26:8~15
아그립바가 유대인의 왕으로 유대인의 사정을 너무 잘 알지만, 로마 편에 서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사정을 너무 잘 아는 부모, 형제, 배우자이지만 막상 다 남의 편에 서 있습니다. 다른 편에 서 있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성령의 약속을 받은 내가 세상의 권한이 아니라 성령의 권한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 권한이 두 번 나오는데, 오늘은 성령의 권한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믿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는다지만 부활을 경험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로 치부했습니다. 부활을 가능한 개념으로만 믿는 것은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개념이 아니라 실재(實在)로 믿어야 합니다. 여긴다(8절)의 헬라어 크리노는 판단하다, 결정하다 더 나아가 정죄하다, 헐뜯다라는 뜻입니다. 밤낮으로 바라는 부활이지만 막상 별반 다를 바 없는 환경과 고난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계속 못 믿을 것으로 여기며 헐뜯습니다. 성령의 약속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예수님은 온 세상 세력들을 멸하실 모습으로 반드시 오십니다. 이 모습은 기복에서 팔복의 가치관으로 바뀌어 내가 죽은 자임이 깨달아져야 알 수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닌 성령의 권한으로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듯 맛보게 하시는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나를 버린 부모, 이혼한 부모, 때린 부모가 용서가 안 되는 것은 부활을 못 믿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나 같은 죽은 자도 살리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저 사람도 살리실 거야 이것이 마음속으로 깨달아져야 성령의 권한이 주어집니다. 이미 부활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남은 부활이 있습니다. 지옥 같은 환경,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가족, 무엇보다 내 속에서 나를 영화롭게 해줄 새로운 부활, 새로운 배우자, 새로운 직업, 새로운 중독을 찾아 부활이 없다고 헐뜯지 마시고 성령의 권한이 임해서 사명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나도 그랬다!'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내 수치와 죄와 연약함을 간증하는 것이 성령의 권한이 주어지는 비결입니다. 자기 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그 사람의 영혼을 소생케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9절에 '나도', 10절에 번역은 안 됐지만 '내가'로 시작하며 자신도 압도적 지위로 예수님을 대적한 대적자였다고 합니다. 이 압도적 지위를 확실히 표현한 단어가 권한입니다. 헬라어로는 엑수시아로 자기 존재 우시아와 발산한다는 엑스의 합성어입니다. 주어진 권한으로 권한 아래 있는 사람을 괴롭게 하며 자기 존재를 발산합니다. 이렇게 악하게 세상 권한을 휘두르다가 자신이 얼마나 월권했는지 깨닫고 '나도 그랬다.'며 바울은 자신의 죄악을 낱낱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 알고 더 엄하고 가혹하게 박해했던 바울은 이것이 '스스로 생각해서 한 일(9절)'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했던 그 일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지 마시고 목장과 공동체에 물어봐야 합니다. 결국 예수를 대적하는 가장 큰 대적은 바로 자기애와 자기 열심입니다. 부활이 안 믿어지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나 에코이스트(이타적)나 피해자나 가해자 다 똑같습니다. 대안은 팔복의 가치관으로 가는 큐티와 목장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번 회개하여 완전히 죄를 짓지 않는 상태의 권한은 주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23장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대적을 한 번에 쫓아내지 않고 조금씩 쫓아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회개하며 가는 모습이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셋째, 나의 피 흘림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14절에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와 후반 절의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직접화법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관심 대상은 오직 바울 한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소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뒤에서 뾰족한 쇠나 가시가 달린 막대기로 찔렀는데 반항하며 뒷발질할수록 소는 점점 더 심하게 찔리고 상하게 되어 고통을 당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네가 남을 핍박하는 것 같지만 가시채를 뒷발질하면서 스스로 피 흘리고 있단다.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너 자신을 찌르고 있는 거야. 왜 나를 박해하니, 바울아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다.'라고 말씀하신 삶을 간증하며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박해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아그립바 왕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우리의 권한을 내려놓고 그 사랑에 매일 때 성령의 권한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도, 예수님을 위해서도 아닌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평생 가시채를 뒷발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셨다면 이제는 다른 권한을 찾아 기웃거리는 일을 멈추고 주님이 최고의 상급이심을 고백하며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권한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공동체 고백은 어느 아빠 목자님의 나눔입니다. 큰아이가 밤 9시가 넘어 초코케이크를 사 오라고 해서 나가 몇 군데 빵집을 들렀지만 모두 케이크가 없었답니다. 집에 있는 딸의 명령대로 몇 군데 빵집을 더 다녀 종류별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고그중에서 케이크를 사 왔습니다. 딸이 먹는 걸 보면서 '내가 우리 딸 덕분에 운동도 하고 이렇게 갔다 오니까 소화도 잘되더라.' 했더니 생색내지 말라고 딱 잘라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정말 목장의 힘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주간 목장 방학한 것을 너무나 회개하며 설교를 일곱 번 들었답니다. 그랬더니 들을 때마다 새로웠고 가장의 자리, 아빠의 자리, 현재 목자의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성령의 위엄이라 생각했다고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바로 이렇게 깨닫고 가는 것이 성령의 권한이 주어지는 놀라운 부활의 목격자인 줄 믿습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 '나도 그랬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부활이 개념이 아닌 실재(實在)로 믿어져 가시채를 뒷발질하며 주님을 박해한 죄를 회개하시는 성령의 권한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