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김완규 목사
갈라디아서 3:19-29
16년 전 여름에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말씀만 세 시간이었는데 한 분도 흐트러짐 없이 예배에 집중하셨습니다. 그 힘이 무엇일까 생각했고 그때부터 궁금해지며 말씀으로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목마름으로 다가왔습니다. 8년 전 개척을 앞두고 장모님의 암 사건으로 목회자세미나 1기를 참여하였습니다. 1년 전에는 온 가족이 관계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아이를 품고 판교 채플에 가서 예배드린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에게 있어서 우리들 교회는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해 하는 저와 제 가정이 피할 수 있는 아둘람 굴이고 살아갈 소망을 주고 나아가야 할 길을 여는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하기 위해 자신의 죄를 보아야 합니다.
환경에 장사가 없는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이 율법을 주셔서 우리 모습을 비추어 주십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인생임을 깨달으라고 주시는 것이 율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향해 더 율법을 강화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간음하고 살인하고 도둑질해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음욕을 품었느냐? 간음하였느니라. 욕심을 품었느냐? 도둑질하였느니라. 미워하였느냐? 살인하였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율법 앞에 내 모습을 봐야 하고, 내 실체와 내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내 영혼 속에 고백할 때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율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정죄당하는 그 순간이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저희 장모님은 집, 교회만 아시던 분입니다. 딸을 사모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바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장모님의 인생은 암으로 마치셨습니다. 그때 교회 분위기는 기도해서 목사 사위를 얻었고, 딸은 사모가 되었는데 저 사람은 무슨 저주를 받아서 암에 걸렸나, 50대 중반의 나이에 암에 걸려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 애쓰고 수고했던 삶과 전혀 맞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영육이 다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 치료차 서울에 오시면서 장모님은 우리들 교회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날 아내는 김양재 목사님께서 암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암은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암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장모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실체를 보셨습니다.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모든 것을 헌신했는데 천국 갈 믿음이 없는 자신을 직면 하셨습니다. 2년 동안 투병 생활하시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 '나 천국 갈 수 있을 것 같아.' 제 아내 이름이 수정인데 '수정아. 너도 이 땅에서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하다가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인간의 노력을 가지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님을, 인간의 열심, 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가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의 힘이 있어서 이렇게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하나의 힘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목장 예배였습니다. 마음을 열고 자신의 약함을 토해놓고 그 말씀을 다시 삶 속에 받아들이고, 들어주고, 함께 하고 함께 우는 그 모습들이 우리들교회 공동체의 힘이라는 것을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구속사의 말씀을 계속 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저의 상태를 진단해주셨고 제 안에 두려움의 실체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 두려움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두 번째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저를 끌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 가운데 진짜 두려움은 돈이고 명예였던 것입니다. 외식의 모습은 가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겉으로는 유하고 상대방을 품어줄 것 같은 사역자였지만 집에 들어가면 그 분노를 쏟아놓는 것입니다. 제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그 꼴도 못 보고 폭력과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구속사의 말씀을 들어가면서 내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고민이 될 때 제 아내가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한 청년이 양육을 마치고 '사모님, 정말 양육 꼭 하셔야 한다고' 이 말에 용기를 얻어서 한 성도, 한 성도님들을 붙잡고 양육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달려와서 기도해주세요가 아니라 말씀으로 문제를 보고 오히려 회개하고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시며, 한분 한분이 세워지시는 것을 보면 이 양육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하는 자는 약속을 이을 사명을 감당합니다.
저에게 우리들 교회 말씀을 처음 알려주신 분은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제 삶의 스승이고 멘토이셨는데 현재는 뇌출혈로 2년째 의식이 없이 누워계십니다. 이사야가 웃시야가 죽어야 소명을 받는 것처럼 장모님은 제 아내의 웃시야였고, 어머님은 제 인생의 웃시야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인생이 되게 하시려고 성령께서는 저희 가정을 이렇게 이끄시고 만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잘 먹고 잘살고 적당히 존경받고 편안함으로 세워지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리니 주님께서 저를 흔드시는 것 같습니다. 인정중독을 매일매일 벗어날 수 있도록 그런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양육하면서 '뭐가 그렇게 힘드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성도들이 말합니다. 빚을 지고 있는데 금리가 올라가니 힘드시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면 참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얼마나 힘이 빠지실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반대로 금리가 내려가면 살만한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잘 되어도 교만해지고 안되면 비굴해지고 교만과 비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명이 아니면 살아간다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왜 사는지에 대해 결정도 할수 없는 것이 우리 모습이구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의 삶의 간증과 나눔들로 살아가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교회 모습이 세계 속에 대안이 되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여전한 방식으로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것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다는 것을 저도 확인하며 이 길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