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예배]
손윤상 목사
시편 8:1~9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은 회중이 한자리에 모여 시인이여호와 우리 주여라고 고백하는 찬송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목하는 예배입니다.
시인은 이 시의 시작과 끝을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감탄하며 반복하고 있습니다.여기서아름답다의 원어 뜻은탁월하다.위대하다입니다.시인은 하나님의 탁월하심,위대하심을 주목하며 감탄하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여인이나 관광지의 웅장한 건물 혹은 대자연을 볼 때,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우리도 주일에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탁월하심,위대하심을 그렇게 주목하고 거기에 깊이 빠져들어야 합니다.주일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지 않으면 삶이 바르게 정렬될 수 없습니다. 1절에 보면하나님의 영광이 온 하늘을 덮었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의 영광은비중,중요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이 가장 비중 있고 중요한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사람의 불행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 비중을 두고 살기보다 자신에게 비중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부유하게 살다 사업 부도로 아버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시고,어머니는 힘들어하시던 중,한 집사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붙드셨습니다.어머니는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서니,고난이 축복으로 바뀌게 되고 삶에서 남은 것을 보셨고,갇힌 인생이 성령의 호의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셨습니다.
둘째,겸손함을 회복하는 예배입니다.
주님의 광대하심과 크심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의 주제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어린아이와 젖먹이로 서 있게 됩니다.그러나 주님의 광대하심 앞에 서지 못 한 사람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우주의 중심으로 놓고 만유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철학,경제,문학,정치,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있습니다.하나님의 크심 앞에 서지 못하면 사람은 주님의 대적과 원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너무나 약하고 미성숙한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통해 모든 대적과 교만을 일거에 무너뜨리십니다.다윗은 이것을 경험했습니다.하나님은 어린아이와 젖먹이에게 권능을 주셔서 교만한 원수를 얼마든지 깨트리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인생을 수치스럽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고전1:25-29절에서하나님은 이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것을 택하셔서 세상의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미련하고 약한 자가 되는 것을 꺼리는 마음이 있습니다.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를 누리게 하시기 위해 어린아이와 젖먹이가 되기를 너무나 원하십니다.겸손하게 주님을 구하고 주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기를 소망하십니다.우리들교회는 부한 자이든,가난한 자이든,능한 자이든,무능한 자이든 모든 사람이 별인생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불가능한 사람입니다.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고백을 온몸으로 증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저는 공고를 나온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 너무도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그런데 우리들교회에 사역 지원을 하며 이력서란에공고라고 적으며 하나님 앞에 약점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고,합격하여 사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저는 성공한 목회를 꿈꾸었는데,어느 날,하나님께서는 내가 성공하는 것을 한 번도 요구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든 온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하나님 앞에 약한 자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하나님이 나의 삶을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셋째,주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신뢰하는 예배입니다.
우주는 사람이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광대합니다.광대한 우주와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입니다.그런데 그런 우주의 별들을 주님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만드시고 태양계와 천체를 유지하시면서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을 붙들어 놓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오늘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히브리어로에노시인데연약하고 유약한,한계가 많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한계가 많고 유약하고 너무나 부족해서 연약해서 쓰러지기 쉬운 그 사람을 생각하시고 품으시고 아버지와 같이 안으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그러려면 상처와 쓴 뿌리가 제하여져야 하는데,피해의식과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저는 아버지가 중학교2학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사건으로 미움과 분노와 원망이 컸습니다.장례를 치르고 빚쟁이가 들이닥치고 어머니가 끙끙 앓는 모습을 보니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나?너무나 아버지가 미웠습니다.그런데 주님은 여름 수련회 기도회 시간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주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내가 너를 안다,내가 너를 사랑한다,내 아들을 주기까지 너를 아들 삼았다.하시면서 저를 많이 위로해 주셨습니다.공동체에 온 후,양육을 통해 아버지는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이 절벽 낭떠러지에 서 있는 큰 고난과 절망 속에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였음이 깨달아졌습니다. 나는 그런 영혼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아버지만 찾으며 몰약 탄 포도주만 마시는 내가 가해자였구나!깨달으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그때부터 내 마음의 자기연민,피해의식,열등감이 확 풀려지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주의 돌보심과 사랑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주일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젖먹이와 어린아이가 되어서 주님의 권능으로 살아서 차별이 없는 복음을 날마다 전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내 안의 쓴 뿌리,자기연민과 열등감을 벗어나게 하는 십자가를 붙드시길 바랍니다.어떤 환경에서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생각하시고 돌보심을 알고 넉넉히 이기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