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호의]
행 24:27~25:11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내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 내가 호의를 베푼 사람보다 나중에 나를 도울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벤 프랭클린 효과라고 하는데, 여러분은 호의 한번 잘 못 베풀었다가 호구가 되는구나!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역시 나에게 잘해준 사람과 잘 지내야겠구나! 생각하십니까? 인간적인 정이나 계산적으로 호의를 베풀거나 받으려 해서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호의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벨릭스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을 구류합니다(27절). 마음을 얻고자 하여(27절)의 원어는 카리스로, 하나님께 쓰이면 은혜, 용서이고 사람에게 쓰이면 호의가 됩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는 사람 만날 자유를 주어 돈을 받기 원했고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을 가두어 두어 나름대로 양쪽에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벨릭스는 유대인을 잔인하게 죽이고 불법이 드러나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마음을 얻고자 대가를 탐하는 호의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호의가 됩니다. 이후 부임한 12대 총독 베스도는 성실하고 유능한 행정가, 정치가였습니다. 부임한 지 3일 만에 유대의 문화적 중심인 예루살렘을 방문하여(1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과 면담합니다(2절). 그들은 신임 총독으로서 호의를 베푸는 베스도에게 다시 한번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주시길 청하는 호의를 구합니다(3절). 바울은 죄가 없어 재판으로 죽일 수 없으니 매복하여 호송하는 바울을 죽이겠다는 2년 전 계획을 실행할 생각입니다. 총독도 바뀌고 환경도 바뀌었지만 2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예배를 드렸을 그들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하는 것은 살인 의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무 안 변하니까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변하지 않았는데 호의가 베풀어지면 이는 죽이는 호의가 됩니다. 그리고 결국 그 호의로 내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호의인 은혜는 큐티와 목장에 답이 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적법한 절차를 따르라며 그들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결국 베스도의 거절은 바울을 지켰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살인이라는 죄에서 지켜주었습니다.
둘째, 차별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호의에 응답이라도 하듯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바울을 재판합니다(6절). 마음을 얻고자 하여(9절)에도 카리스의 뜻이 있습니다. 베스도의 호의는 초라한 로마시민 죄수 바울보다는 자신이 통치하는 유대 사회의 유력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공정해야 할 재판정에서 성실한 베스도도 벨릭스처럼 차별합니다. 인간적인 호의는 이렇게 차별적, 선택적 호의입니다. 그래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성령에 속하는 일이고, 말씀이 있기 때문에 호의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셋째,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유대인들이 죄인의 모습으로 나온 바울을 둘러서서 또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라고 합니다(7절). 능히의 원어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아무리 모든 것이 나를 둘러싸도 나를 해할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눈앞에 실직, 암, 이혼, 가출 등 사건과 환경이 너무 중대해 보이지만 나를 해할 능력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변명(8절)의 원어 아폴로 게오마이는 사과라는 뜻으로, 바울은 한결같이 사과하는 태도와 낮은 자세로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평소에 둘러싸인 목장에서 늘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이 된 사람들은 아무리 나를 해하려는 둘러싸임에서도 내 죄에 대해 사과하는 심정으로 말하게 됩니다
넷째,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받겠냐?는 베스도의 호의를 베푸는 질문(9절)에,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로마에서 심문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0절). 바울은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로마임을 알고 있습니다. 내줄 수 없다(11절)의 내주다의 뜻도 카리스, 호의입니다. 바울은 지금 죄인으로 갇혀 있고, 가장 상급 기관인 황제 가이사 앞에 가기 전까지 누구도 바울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카리스에는 자비, 용서, 은헤의 뜻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나의 갇힌 환경이 로마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의 호의이며 하나님의 용서이며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담대하게 '나는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11절)' 하며 로마 시민권을 비로소 사용합니다. 그래서 갇혀 있고 묶여 있는 환경은 우리의 영혼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단에게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으니 누구에게도 내어줄 수 없다.고 대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성령의 호의입니다.
저는 워싱턴 중앙장로교회에서 열리는 세계 선교사 대회에 참여할 예정인데, 며칠 전, 워싱턴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목사님 내외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민 생활 중, 4년 만에 낳은 세 자녀 중 한 아이는 자폐아로 가정과 교회, 직장생활에 갇혀 지내기를 29년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작년 10월 온라인으로 진행한 베델교회 부흥회를 통해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들리는 수지맞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 책을 읽고, 《큐티인》으로 큐티하고, THINK 목회자 세미나 양육을 수료하면서 회개의 역사로 아내의 매사가 살아났습니다. 저는 매일 온갖 말씀 묵상과 내적 치유, 감정 치유, 인지 치유를 했지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제가 죄에 대한 회개가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죄를 고백하니 성도들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은혜가 시작되었습니다. 지인 목사님들 모두 목회자 세미나에 등록했고 개최 교회 주변에서 숙박하며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호텔을 잘 정하고, 안전하고 은혜로운 목회자 세미나가 되도록, 더욱 많은 인원이 등록하여 그 자리에 한 목회자라도 더 불러 주셔서 마른 뼈가 살아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워싱턴 지역 목회자들을 살려주시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편지를 읽으며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성령의 호의에 눈물이 났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의 호의는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해야 합니다.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갇혀 있어도 거기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며 주의 길을 가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